"빈대 물린 줄" 갑자기 가려워서 '벅벅'…이 질환 때문이었다

정심교 기자 2023. 11. 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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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40년 만에 빈대가 곳곳에서 출몰하면서 빈대에 물려 극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또 요즘처럼 건조한 가을엔 피부 수분이 줄면서 피부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이도 적잖다. 그런데 이런 가려움증이 '의외의 질환이 숨어있다'는 몸의 신호일 수도 있다. 몸속 어딘가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 예상치 못한 곳이 가려울 수 있어서다. 실제로 피부가 너무 가려워 피부과를 찾아오는 환자의 20~30%는 가려움증의 원인이 내과 질환으로 밝혀진다.

피부에 문제가 없는데도 온몸이 계속 가렵다면 피부과나 가정의학과에서 혈액검사를 받아 내과 질환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권장된다. 내과 질환 때문에 가려움증이 생겼다면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서 가려움증을 개선하는 항히스타민·항오피오이드 계열의 약물요법을 병행해야 한다. 히스타민이 들어 있는 식품(소시지·커피·녹차·와인·참치·고등어·꽁치·돼지고기 등)은 가려움증이 있을 때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을 알아본다.

당뇨병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 환자는 여러 이유로 몸이 가려울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땀 같은 체액에 당(糖) 성분이 많은데, 피부에서 세균이 당을 먹고 감염을 일으키면 염증에 반응하는 히스타민이 분비돼 몸이 가렵다. 특히 살이 접히는 부위나 항문·음부가 매우 간지럽다. 당뇨병의 합병증인 신경병증이 있어도 전신이 가렵다. 감각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가렵지 않은데도 가렵다고 느끼고,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다리에 땀이 거의 나지 않아 발·다리가 건조해지고 가려울 수 있다. 이런 당뇨병 환자는 혈당을 조절하는 치료가 기본이며, 세균 감염이 가려움증의 원인이라면 해당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만성 콩팥병
당뇨병 발병 후 15년 정도 지나면 콩팥 기능이 망가져 만성 콩팥병(신부전)을 야기할 수 있다. 만성 콩팥병이 있을 때 전신이 가려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적잖다. 이는 콩팥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서 생긴 '요독(尿毒)' 때문이다. 요독은 콩팥에서 걸러지지 못해 몸에 남게 된 체내 독소를 말한다. 말기 콩팥병 환자의 22~48%에서 요독성 가려움증이 나타난다. 요독으로 생긴 가려움증은 얼굴·등·팔·가슴·다리 등 전신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 요독은 피부 건조증도 유발한다. 요독이 땀·피지를 분비하는 한선·피지샘을 위축시켜서다. 이 때문에 말기 콩팥병 환자의 60~90%는 피부건조증으로 인한 가려움증을 호소한다. 이런 환자들은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보습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간 질환
알코올성 간 질환, 바이러스성 간염 같은 만성 간 질환이 있으면 피부가 건조하면서 가려운 증상이 잘 나타난다. 간 기능이 떨어져 체액 분비량이 줄어들면 세포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데, 이에 따라 피부 세포가 건조해지면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간 수치가 높은 만성 간 질환 환자의 20~30%는 온종일 몸을 긁을 정도로 피부가 건조하고 가렵다. 담즙(쓸개즙) 정체증이 있어도 몸이 가렵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도(담즙이 흘러가는 길)를 거쳐 쓸개에 도달한다. 그런데 담석·담도암 같은 덩어리가 담도를 막으면 담즙이 머물러 있다. 정체된 담즙이 혈관을 타고 역류해 전신을 돌아다니면서 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담즙 성분 중 담즙산이 가려움을 유발할 것이란 가설도 있다. 이런 담즙 정체증 환자는 눈 흰자위, 손발이 노란 게 특징이다. 담즙 속 빌리루빈이 황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갑상샘 질환
갑상샘 기능 항진증 환자의 절반가량은 가려움증을 호소한다. 이 질환이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기전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갑상샘 기능이 항진되면 신진대사가 과잉돼 혈류량이 많아지고 피부 온도를 높이는데, 이때 피부 속 히스타민이 자극받아 가려움증을 일으킬 것이란 가설이 의학계에서 힘을 얻는다. 항갑상샘 약물이 몸을 심하게 가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 경우 약물 복용을 멈추기보다 항히스타민제를 함께 먹는 게 낫다. 항갑상샘 약을 다른 종류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혈액 질환
혈액 세포를 만드는 골수에 이상이 생겨도 몸이 가려울 수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진성 적혈구 증가증'이다. 진성 적혈구 증가증은 혈액 세포의 과도한 생성을 자극하는 단백질(효소)을 생산하는 야누스 키나아제 2(JAK2)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발병한다. 골수에서 적혈구가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진다. 적혈구가 급격히 많아지면 가려움을 유발하는 히스타민이 늘어나면서 몸이 심하게 가려울 수 있다. 이 밖에도 빈혈증,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 호지킨 림프종(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계에 발생한 악성종양)도 가려움증을 동반할 수 있다.
정신 질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어도 가렵다고 느낄 수 있다. 피부·뇌는 발생학적 뿌리가 같아 서로 신호를 긴밀하게 주고받는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의 36~42%가 가려움증을 호소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우울증·불안증·강박증 같은 정신과의 문제가 있으면 가려움을 참는 역치(감각세포에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 자극의 크기)가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치가 특히 낮아지는 사람은 가려움증을 잘 느낄 수 있다.

도움말=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유박린 교수, 내분비대사내과 황유철 교수,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고기동 교수, 신장내과 김애진 교수, 내분비대사내과 이기영 교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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