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신임 사장의 대학살' 발생 원인은 윤 대통령이다
[기고]
[미디어오늘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박민 KBS 신임 사장이 임명 당일인 지난 12일부터 본부장, 국·실장, 부장 등 72명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14일에도 부장급 중심의 102명 인사 발령을 했다. 일부 뉴스 진행자들에게는 문자로 하차를 통보했다. 그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충격적 인사 조치를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21세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례가 없는 대학살이라는 점은 너무 분명하다.
박 사장이 말하는 공정성은 자신만이 선이고 정의라는 기준으로 편향된 논리일 뿐 남의 공정성은 악이요 불의로 단죄하는 폭력적 발상의 결과일 뿐이다. 공정성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그 정의나 실천이 어려운 것인바 예를 들면 선거철에 여당과 야당이 말하는 공정성이 언제나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된다.
박 사장은 자신이 부임하기 이전 KBS의 보도논평 등에 대해 완벽하게 불합리하다는 딱지를 붙이면서 인사 조치를 취하고 추후 문제가 발견되는 부적절 보도 등에 대해 담당자를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는 언론사 입사 초년생도 비웃을 태도라 하겠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언론은 속보경쟁이 필요조건의 하나가 되어 있다는 점, 언론 보도는 취재원이 협조하지 않거나 심지어 취재를 방해할 경우도 있어 오보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언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예를 들면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보도의 경우 대통령실이 방송사의 확인 요청에 상당시간 침묵한 것이 주원인의 하나였다. 이를 현 정권은 방송사의 귀책사유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는 언론보도에 대한 ABC를 깡그리 무시한 정치적 폭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사장이 강조한 자신의 공영방송 가이드 라인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눈높이와 사고방식을 KBS 보도원칙으로 못박겠다는 비상식적 태도를 넘어 편성규약과 방송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할 것이다. 박 사장의 경우 국회 청문회를 전후해 제기된 여러 문제점에 의해 방송사 사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그의 임면권을 쥐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 맘대로 식 인사에 의해 취임이 강행되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철학의 기조로 민주주의, 법치, 상식을 앞세우고 있지만 임면권을 쥐고 있는 방송기구나 방송사를 통한 언론통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시절 블랙리스트의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인사를 방송행정부처의 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밑바닥을 기는 자신의 지지하락 원인 등을 언론 탓으로 돌리면서 어린아이들이 보아도 손사래를 칠 방식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방식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이 휘둘렀던 수법과 형식은 다르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가짜뉴스라고 폄훼하면서 대중매체를 적대시 해왔다. 이런 행태는 소수 일탈적인 언론보도를 구실로 삼아 이뤄지고 있지만 소 뿔을 고친다며 소를 잡아 죽이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극력 피했어야 할 부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통해 방송계를 초토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행정에 대한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정원이 5명인데도 대통령을 추종하는 듯한 단 2명만으로 파행 운영케 하면서 KBS MBC 임원을 해임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 역할을 한 인물은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임명토록 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탈법적인 인터넷언론 가짜뉴스 심사까지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고 서울시의 행정력을 이용해 한 인터넷 방송사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여론전을 맹렬히 진행 중이다.
이 정부와 그 추종자들은 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가짜뉴스로 공격하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지만 가짜뉴스의 속성을 살필 때 개념 규정도 아직 모호하고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에 대해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이 때문에 EU는 가짜뉴스 대신 '조작된 정보' 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했고, 영국정부도 공식 석상에서 '가짜뉴스'(fake news)라는 표현 대신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혹은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공공캠페인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미국식 표현인 'Fake News'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조작뉴스(fabricated news)' 또는 '허위정보(false information)'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짜뉴스는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잘못된 정보(disinformation)이다. 언론사의 오보(misinformation)의 경우 일부러 거짓정보를 유통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면 가짜뉴스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시각차가 아직도 크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처럼 정권 차원에서 그 대책에 올인 하는 경우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내 세우는 '민주주의, 법치,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해괴한 것인가를 그의 저열한 방송대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짜뉴스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①허위사실을 ②고의적·의도적으로 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③기사 형식을 차용하여 작성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김민정, 2018; 윤성옥, 2018; 정세훈, 2018; 한갑운·윤종민, 2017; 황용석·권오성, 2017 등). 가짜뉴스는 정치적 선전이나, 상업적 이익을 노린 검은 비즈니스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 대한 정치권의 법적 규제나 단속은 자칫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그 도입을 꺼리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제재 등 타율적 규제 도입이 지닌 부작용이 너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 정보공급 업체나 그 유통업체 등이 자율적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즉 가짜뉴스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존의 명예훼손 법 등을 활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정보의 공급과 소비 두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 대책 추진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공영방송 등 대중매체 등이 양질의 정보를 양산하도록 지원하고 소비자들에게 정보와 미디어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도록 초중고 대학 교육기관이나 성인들이 참여하는 관련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대책을 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짜뉴스를 사이버 공간에서 포착해 내는 기술 개발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매우 자주 나가고 있는데 국내에서 독재적 방식과 흡사하거나 그것을 교묘하게 변형시킨 신종 공작정치와 같은 언론 탄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선진외국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격을 측정하는 척도의 하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언론정책, 그 대책에 대해 진정한 민주주의, 법치,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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