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대표이사 2개사, 한전 발주 사업 입찰담합…“기술규격서까지 공유”

유성계전가 입찰시 제출했던 기술견적서(왼쪽)와 다온시스 기술견적서의 제품 설명 문구와 그림이 완전히 일치한다.

부부가 각자 대표 체재로 운영하는 디지털변전소 운영시스템 제조사 2곳이 한국전력공사 발주 사업에서 입찰담합한 사실이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전에 기술규격서 내용을 공유하고 투찰가격을 합의해 프로젝트 3건을 수주한 이들 기업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2019년 7월부터 작년 2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14건의 디지털변전소 운영시스템 구매 입찰에서 담합한 유성계전, 다온시스에 과징금 2억5600만원을 부과했다고 15일 밝혔다.

디지털변전소 운영시스템이란 변전소에 산재된 각종 설비를 총괄 운영 시스템이다. 운전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설비를 제어하는 감시·제어 설비와 고장구간을 신속하게 계통에서 분리해 고장확대를 방지하는 보호계전설비로 구성된다. 민간발전소 수요가 없어 한전이 유일한 수요처이며, 설계·제작에 상당한 기술수준이 요구돼 국내에서는 피심인들을 포함한 10여개 사업자들만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유성계전과 다온시스는 2019년 7월부터 작년 2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총 14건의 디지털변전소 운영시스템 입찰에서 사전에 투찰가격 등을 합의하고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2개사가 외부적으로는 경쟁 관계로 가장하여 입찰에 참가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명령체계에 의하여 운영되는 '사실상 하나의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2개사 대표이사는 부부관계로 양사의 임원을 겸임했으며, 한 명의 입찰 담당자가 양사의 입찰업무를 동시에 담당하여 양사의 투찰가격 등을 동시에 결정했다.

오행록 공정위 제조카르텔조사과장은 “피심인들은 경쟁관계를 가장하여 입찰에 참여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명령체계에 의해 운영되는 사실상 하나의 사업자”라면서 “유성계전과 다온시스의 주요 임원들은 가족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성계전의 대표는 다온시스의 실질적인 대표로도 활동해 규격입찰·가격입찰에 이르는 입찰의 모든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명의 직원이 2개사의 입찰업무를 동시에 담당하였으며 입찰업무의 최종 보고라인 또한 유성계전의 대표로 동일했다”면서 “모든 입찰건에 대해 입찰참가신청 IP가 동일했고, 입찰시 제출했던 기술규격서 내용 또한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유성계전과 다온시스는 최소 3개 업체 내지 최대 9개 업체가 참여한 총 14건의 입찰에서 담합행위를 했고, 그 결과 총 3건의 입찰에서 유성계전 또는 다온시스가 낙찰자로 선정됐다.

오 과장은 “사실상 1개 사업자가 가족회사 등을 동원해 다수 사업자의 명의로 입찰에 참가하여 경쟁질서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면서 “앞으로도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 담합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적발 시 엄정하게 제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