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빌딩과 온실의 훈훈한 시너지…미래형 도시텃밭 옥상 스마트팜
온실은 버리는 이산화탄소 쓰고, 건물은 냉난방 비용 줄이고
신선 식품 유통 개선 효과까지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간 지난 14일. 두꺼운 패딩이 아니면 거리를 걷기 힘들 정도의 날씨였지만,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옥상에 올라서자 봄 기운이 가득한 나른한 온기가 전해졌다. 한국기계연구원이 자체 기술로 건물 옥상에 조성한 대형 온실이다.
“지금까지 건물 옥상을 활용해 온실을 설치한 사례는 많았지만, ‘액티브 에너지 교환’ 기술을 이용해 건물통합형 도시농업을 구현·실증한 사례는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효율 역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에너지·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계속되는 도시화와 기후 위기 속에서 도시농업을 통해 미래 식량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계연 무탄소연료발전연구실의 이상민 책임연구원은 200㎡의 온실에서 발표를 이어나갔다. 엄연한 ‘농사 현장’이지만 수경 재배 방식이라 온실 안은 무균 실험실처럼 깔끔하고 쾌적했다.
이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개발한 액티브 에너지 교환기술은 건물과 온실의 에너지를 통합 제어해 적극적인 방법으로 열과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이 연구원은 “우리 콘셉트는 도시 농업을 확산시키면서 건물 에너지 사용도 함께 줄이겠다는 것”이라며 “건물에서 버려지는 열과 이산화탄소는 온실에서 작물을 기르는 데 쓰고, 온실효과와 열 차단 효과를 통해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사용도 줄이는, 진정한 ‘그린 빌딩’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발전은 지역에 위치한 발전소가 전기를 만들어서 전력 수요처로 송전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송전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크다. 대략 40% 정도의 에너지가 송전 과정에서 사라진다. 최근 화제가 됐던 초전도 기술이 관심을 모았던 것도 송전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을 ‘제로’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직 초전도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으로는 전력 수요처에서 직접 전기를 만드는 ‘분산 발전’이 떠올랐다. 다만 전기 수요만큼의 열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아 경제성 문제에 부딪혔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온실의 전기 부하와 열 부하를 충분히 이용해 분산 발전의 가능성까지 열었다. 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건물 공기와 산소 농도가 높은 온실 공기를 서로 교환해 환기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냉·난방 에너지는 20%, 온실가스는 30% 줄일 수 있으며 작물의 생산성은 20% 증가하리라 기대했다.
연구팀은 옥상 온실을 활용한 건물 에너지 절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 기상 조건에 따라 냉난방·LED·양액(양분이 들어간 물) 공급 등 모든 시스템을 통합 제어할 수 있는 ‘맞춤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개발했다. 수분(受粉)이나 솎아내기·수확 등 작물이 자라면서 필요한 일부 작업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나, 현재 온실에서는 인력 1명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작물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단순한 에너지 절감뿐 아니라 식품 유통망의 개선 효과도 기대된다. 이 연구원은 “최근 신선식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도시농업 시장도 굉장히 빨리 성장하고 있다”면서 “건물 일체형 옥상 온실은 유휴공간인 옥상을 활용해 인근 식당의 식재료로 사용가능한 고부가 작물을 재배할 수 있으며, 산지(産地)와 소비처가 가까워져 신선식품의 수송과 저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콜드체인(cold chain) 손실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성수동의 온실도 인근에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식당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이들 식당에서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작물인 트리벨리 파프리카·오크라·서양 가지를 재배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건물 옥상의 면적이 넓지 않은 경우에는 고부가가치 작물 중심의 다품종·소량 재배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작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야간에도 조명을 비추게 되는데, 작물 재배 정도에 따라 조명 색깔이 달라지면서 부수적인 장식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광(光)공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암막을 설치하거나 저녁 8시 이후에는 조명을 끄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건축법상 규제가 까다로워 온실 설치·관리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도 지적됐다. 연구팀은 “온실이 가지는 친환경·사회적 이득까지 고려해 규제가 완화되면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엄격한 고도 제한 속에서도 옥상 온실에는 특례를 인정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사례를 거론했다. 연구팀은 이번 온실 실증 연구를 기반으로 더 큰 규모와 개선된 시스템의 2차 실증을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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