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서 버려지는 에너지로 옥상 온실서 파프리카 재배
서울 도심 한복판에 파프리카, 서양가지, 오크라 등의 채소를 키우는 옥상 온실이 있다. 건물에서 버려지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폐에너지 활용, 도시농업 구현, 미래 식량문제 해결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기계연구원은 14일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건물 일체형 옥상 온실’을 공개했다. 국내 최초로 액티브 에너지 교환기술을 활용해 도심 속 건물 옥상에 온실을 짓는 실증에 성공했다. 액티브 에너지 교환기술은 건물 에너지와 온실 에너지를 함께 제어해 열과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2021년 5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진행되는 기계연의 옥상 온실형 스마트 그린빌딩 개발 사업은 정부출연금 320억원 포함 369억원의 연구비가 투자됐다. 200㎡ 규모의 온실에는 외부 기상 조건에 따라 냉난방, LED, 양액 공급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맞춤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적용했다.
LED 광램프는 식물 종류나 크기 등에 따라 다양한 파장을 제공해 작물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고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광량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는 작물의 광합성 효율을 높인다.
옥상 옥실 개발 사례는 각국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상민 기계연 친환경에너지변환연구부 무탄소연료발전연구실 책임연구원은 “독일은 마트 위에 온실을 만들어 재배한 작물을 판매하고 있다”며 “프랑스 파리 데이터센터는 올해 센터의 폐열을 이용한 작물 재배 모델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도 식당이나 공장 위에 온실을 설치해 판매, 체험, 교육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아파트 위에 복지 차원에서 옥상 온실을 짓고 있다. 고도 제한이 까다로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온실 설치 시에는 규제를 완화하는 등 온실 증축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옥상 온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도심 속 온실의 상용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책임연구원은 “온실 외피를 경량 재질로 사용하고 싶어도 건축법에 따라 불연성 재질을 사용해야 해서 무거운 유리 재질로 만들었다”며 “온실 규제가 풀리면 건축비를 절감하고 온실 증축은 더욱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도심 옥상에는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는 유휴공간들이 많다. 이러한 공간에 온실을 만들면 인근 식당에 곧바로 식재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산지와 소비처가 가까워 수송 및 저장으로 발생하는 콜드체인(저온 유지 시스템) 비용이 줄고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작물을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건물에서 버려지는 열과 이산화탄소를 온실 작물 재배에 활용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는 건물 냉·난방 에너지를 20% 절감하고 온실가스는 30% 감축하며 온실 작물 생산성은 20% 증가하는 등의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온실 온도가 높아지는데, 이 열을 건물에 전달하면 에너지 절감 효과가 나타난다. 온실은 식물로 인해 산소 농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건물 내 환기 등에 해당 산소를 활용할 수도 있다. 건물은 낮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온실은 한겨울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 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면 에너지 효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화 시설을 갖추고 있는 만큼 재배에 투입되는 인력도 크게 줄어든다. 성수동 옥상 온실 규모 기준으로는 한 명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해 관리하면 되는 수준이다.
기계연은 성수동 공유오피스에 마련된 첫 실증 건물에 이어,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 현재보다 2~3배 큰 규모의 2차 실증 건물을 마련할 예정이다. 건축공간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기계연과 함께 건물 옥상 온실 표준 설계와 저공해·고효율 다중분산발전 시스템 및 건축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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