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K-Book에 길 터줄까[뉴스와 시각]

박동미 기자 2023. 11. 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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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누구든, 어떤 책이든 낼 수 있습니다. 그게 살만 루슈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지난 1∼12일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에서 개최된 '샤르자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에 비해 낯선 샤르자는, 사실 UAE의 '문화 수도'로 불리며 2019년엔 유네스코 '책의 수도'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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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문화부 차장

“여기선 누구든, 어떤 책이든 낼 수 있습니다. 그게 살만 루슈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지난 1∼12일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에서 개최된 ‘샤르자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다. 주빈국 자격으로 온 한국 취재진에게 아흐메드 빈 라카드 알아메리 샤르자도서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살만 루슈디가 누군가. 소설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살해 위협에 시달려온 작가다. 그리고 여긴 UAE 7개 연방 중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로 유명한 샤르자다.

알아메리 청장의 말은 샤르자의 대담한 출판 정책을 응축한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에 비해 낯선 샤르자는, 사실 UAE의 ‘문화 수도’로 불리며 2019년엔 유네스코 ‘책의 수도’로 선정됐다. 책에 관해선 중동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다. 문화의 핵심인 출판을 국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는 한계와 모순도 있으나, 올해도 108개국이 참가하고 200만 명 넘게 다녀간 도서전을 비롯해 100% 면세인 ‘샤르자 출판 도시(SPC)’, 세계 유일 도서청 등은 출판 규모 세계 10위권의 한국에서 온 출판인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포스트 석유’ 시대를 준비하는 UAE에서 미래 먹거리로 책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언어학자인 현 국왕의 취향과 취미가 출판 정책의 가장 큰 동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게 아니면, 21세기 대표 사양산업에 이토록 열정적일 수 있을까.

SPC에 대한 도서청장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납득이 갔다. UAE 인구는 1000만 명(샤르자 140만 명)이 채 되지 않고, 그중 80%가 외국인이다. 정주 인구에 사활을 건 UAE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데, 출판 정책 역시 큰 틀에서 지향점이 같다. 그는 “SPC에 출판 종사자들이 늘어나, 이들이 샤르자에 살며 경제활동을 하면, 책 수익 몇 배의 고부가가치가 된다”고 했다. 또한, SPC와 도서전의 시너지를 통해 유럽에서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출판 허브’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도 있다.

한국 역시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출판 허브’로 급성장 중이다. 다른 정치 체제와 종교로 인해 멀고 멀었던 심리·문화적 거리가 단숨에 좁혀진다. 양국의 만남이 이제야 의미심장하다. 도서전 수주 상담에서 한국 출판사들의 테이블은 가장 인기였다. 한 출판사 대표는 유럽의 도서전에선 볼 수 없던 터키, 이란, 이라크 등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 시장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한국관을 찾는 현지 젊은 독자들도 기대를 품게 했다. K-팝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란 세대가 한국어와 한국 책에까지 눈을 돌린다. 그동안 실체가 흐렸던 중동에서의 K-콘텐츠 영향력을 확인했으니, 그 자장 안에서 이제 ‘K-북’의 분발만 남았다. 그러고 나니 “도서전에는 정치도 종교도 없다”며 “책은 모든 이해의 바탕이다”고 한 도서청장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이제 ‘우리는 책을 말한다’고 선언한 중동 출판 시장에서, 우리는 한국관의 주제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때, 정치와 종교는 하지 못해도, ‘책’이 하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박동미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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