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정치는 안보도 망친다[김석의 시론]

김석 기자 2023. 11. 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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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국제부장
극우 지지로 총리 된 네타냐후
사법 무력화로 국가 분열 초래
하마스 이상 징후 보고도 무시
공격 못 막고 중동 외교도 냉각
미국과 파열음 등 위기 더 키워
文정권의 안보 무력화 데자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보복에 들어간 지 40일 만인 15일 가자지구 북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과와는 별개로 전쟁의 후폭풍 속으로 끝없이 빠져드는 모습이다. 전쟁 초반 하마스의 살인·인질 납치 등과 같은 테러에 경악하며 이스라엘 편에 섰던 세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서자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인근 아랍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했던 아브라함 협정이 삐거덕거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수립도 물 건너가면서 수니파 국가들과 손을 잡고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을 고립시키려던 전략은 물거품이 됐다. 역사적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이스라엘 편에 섰던 유럽에서도 이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맹인 미국과는 일시 교전 중단 및 인질 협상 문제, 전후 가자지구 통치 문제 등을 놓고 파열음을 내는 중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극단 정치에 있다. 극우파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포퓰리즘에 기댄 정치를 해왔다. 미국 등 서방의 우려에도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했고,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사법 개혁안을 추진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권력을 잃은 적이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사법 개혁안은 대법원 판결을 의회 투표로 무효화하는 내용을 담은,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 줄 법안이었다. 또, 행정부의 비합리적인 정책을 직권으로 폐지할 수 있는 사법부 권한을 삭제하는 내용은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추진하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지층인 극우파들에 눈엣가시인 사법부를 손보는 동시에 총리 자신의 방탄까지 노린 법안인 셈이다.

극단적 당파성을 띤 네타냐후 총리의 행보는 국가를 분열시켰다. 네타냐후 총리는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이 사법 개혁안에 반기를 들자 지난 3월 해임했다가 여론 악화에 해임을 취소했다. 이스라엘군 고위 관계자들은 7월 24일 의회(크네세트)에 하마스와 관련한 긴급 보고를 하려 했지만, 이날이 사법 개혁안 처리일이어서 보고가 무산됐다. 사법 개혁안 강행에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 히스타드루트는 총파업을 벌였고, 예비역 1만여 명이 복무 거부에 서명했으며, 현역 군인들도 시위에 나섰다.

군과 정보 당국은 정치적 혼란이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 등 적들에게 이스라엘이 약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네타냐후 총리 등은 이를 무시했다. 사법 개혁안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만남을 꺼리다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야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도 사법 개혁안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하마스가 도발에 나설 기회라는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네타냐후 총리의 당파적 행보와 극우 포퓰리즘은 정보기관 기능도 마비시켰다. 가자지구 국경에 배치된 정보 군인들의 잇단 이상 징후 감지 보고는 완전히 무시됐고, 하마스 부대원들에 대한 무전기 도청도 중단됐다. 극우파들에게 하마스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 등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전열을 가다듬고 가자지구 장악에 성공했으나 전쟁이 끝나도 승리라 말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마스 격멸을 내세웠지만, 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하면서 제2의 하마스가 자라날 씨를 곳곳에 뿌렸다. 중동 국가들과 관계는 냉각될 조짐이고, 유럽과도 서먹한 사이가 돼가고 있다. 가자지구 처리 문제를 놓고 미국과는 견해차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에 기대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정보기관 기능을 마비시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이스라엘 정치권의 모습은 묘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좌파 지지층에 취해 검찰을 형해화하고 국가정보원 정보·수사 기능을 제거한 문재인 정권 행보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보여주듯 극단 정치는 국가를 존망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스라엘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되도록 둘지, 막을지를 결정할 시간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김석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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