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기업, 중처법 피해 클것...법원·검찰 전문성 키워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강연
“모호 부분많아 현장혼란 야기 우려
기소·처벌집중 中企, 면밀 대응 필요”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에 불명확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아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과 해석이 횡행, 산업현장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내년 1월 27일부터는 중처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됨에 따라 면밀한 준비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포텔에서 열린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 주최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쟁점과 개선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서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중처법 시행 이후 ‘예방지도’보다 ‘처벌’에 집중해 온 경향이 훨씬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호한 법과 취약한 산재예방 인프라 속에서 중소기업들이 기소와 처벌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중처법 위반으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13일 기준) 검찰로부터 기소된 28건(급성중독 1건, 사망 27건) 중 엄밀한 의미의 대기업은 1곳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소업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중처법 기소 첫 대상인 두성산업 측에서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기각된 사례를 소개하면서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상당히 결여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실질적인 쟁점에 관한 법원의 심리와 판단의 부재로 기업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중처법 기소 및 처벌의 주된 대상이 현재는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지만, 내년 1월부터는 영세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두성산업과 두성산업 대표 A씨는 독성화학물질인 트리클로로메테인이 든 세척제를 취급하면서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 보건 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이후 A씨는 이달 초 형사4단독(강희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320시간 명령을 받았다. 두성산업 법인은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전국에서 중처법 위한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다.
A씨 변호인 측은 중처법 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1항1호, 6조(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2항이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현재 법원에 1심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정 교수는 “중처법 1∼3, 6, 7, 9호 판결은 피고인의 자백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에서 사실관계와 법리가 다퉈지지 않아 검찰의 공소사실이 그대로 판결문의 범죄사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직 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판결 모두 법리와 증거보다 유죄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무리한 추론으로 꿰맞추기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사실상 ‘유죄 판결 법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중처법 관련 판결 상당수가 건설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그는 “원청의 하청에 대한 지배력이 크고, 원청과 하청의 작업이 구분하기 어려운 건설현장 특성 탓에 원청의 책임을 묻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것”이라며 “검찰과 재판부 모두 하청 경영책임자가 해야 할 일조차 원청 경영책임자가 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원의 ‘전문성 부재’도 개선돼야 할 요소로 꼽았다. 정 교수는 “산업재해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과 재판부 모두 전문성이 부족해 피고인 측에서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법리에 맞지 않은 판단이 내려질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판결은 경영책임자의 중처법 의무 위반과 사망 간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판단하지 않고, 양자 사이에 산안법 의무 또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끼워 넣는 ‘2단계 인과관계 형식’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며 “중처법 의무가 이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산안법 의무 또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본 것은 논리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성이 결여된 판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소업체의 경우 전문성을 갖춘 법률대리인을 선임하기 어려워 사법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며 “애초 (중처법이) 대기업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한 취지였음에도 법 시행 전에도 이미 처벌돼 온 중소업체 경영책임자 처벌에 쏠려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또 “현재까지 판결은 전체적으로 볼 때 중처법에 규정된 업무절차(매뉴얼), 평가기준, 점검, 예산 편성·집행, 인력 배치 및 조직 구성을 기본적으로만 이행하고 있거나 서류를 잘 구비해 놓으면 기소·처벌될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중처법 판결은 중처법이 낳고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라며 “중소·영세기업이 사법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처법 위반의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중처법상의 안전보건확보의무(13개 사항)를 가급적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서류를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재근 기자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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