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박물관 자료의 기증

2023. 11. 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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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국립항공박물관에 기증한 사이테이션기(Citation 560). 민간 조종사 1272명의 훈련기로 사용된 소형 제트기다. [국립항공박물관 제공]

박물관에서 자료(資料)를 수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료는 ‘유물(遺物)’이라고도 하는데 유물은 앞선 세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건을 일컫는 것으로 ‘유형(有形)’적인 것에 방점이 찍혀 있고, 자료는 유형에만 국한하고 있던 개념을 무형(無形)이나 음성, 영상 등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해 사용하는 용어다. 우리나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박물관 자료’란 박물관이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 등에 관한 인간과 환경의 유형적·무형적 증거물로서, 학문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박물관 자료는 발굴, 구입, 수증, 수탁, 이관 등으로 수집하고 있다. 발굴은 땅속에 묻혀 있는 자료를 고고학적 조사로 찾아내 자료로 삼는 것이고, 구입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수증은 자료에 대한 소유권과 제반 권한을 양도받는 것인데, 박물관으로서는 수증이 되고 개인이나 단체에는 기증이 된다. 수탁은 자료의 관리와 활용권한을 일정 기간 위임받는 것이며 개인이나 단체에는 기탁이 된다. 그외 이관, 관리 전환, 양여 등은 개별적인 법규나 계약에 의해 성립된 근거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은 기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박물관에 자료를 기증한다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염두에 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박물관 종사자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소장자료가 집안에 전승돼온 것이든, 구입을 통해 매입한 것이든, 선물이나 증여를 통해 취득한 것이든,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소장하게 된 것이든 상관없이 선의를 믿고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곧 자료를 기증받는다는 것은 자료에 대한 항구적인 보존과 관리를 약속하는 것과 함께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증받는 과정에서의 절차와 방법 역시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박물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종사자로서 경험했던 사례 몇 가지를 통해 자료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 기증자료는 박물관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 항공박물관이 기증받는 자료는 ‘항공’과 관련된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증거물이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의 경우 그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 자료로서 지역적 특징을 함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예전에 일했던 박물관은 주변에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등이 잘 보존된 지역에 위치해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많은 곳 중 하나였다. 그러한 여건 때문에 소장자들로부터 많은 제안이 있었다. 대부분 본인이 소장한 자료의 수량과 다양성을 역설했지만 대개 자료들이 지역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나 의회를 통해 제안하는 일도 있어서 담당자는 이에 대한 논리 정연한 답변을 작성하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여야 했다. 결국 지역의 역사 문화적 특징과 맞지 않는다는 논리가 최선의 방어책이 됐다.

둘째, 조건이 따르는 자료의 기증은 받지 않아야 한다. 기증 의사가 순수하다면 자연히 기증에 있어서 조건이 따르지 않게 된다. 기증자 가운데는 자료를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요구하거나 기증자료를 활용한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상품점을 운영하게 해 달라거나 명예관장의 지위를 부여해 달라거나 문화재 지정을 약속해 달라거나 상설 전시를 요구하거나 기증보상금을 지급해 달라는 등 여러 행태의 요구를 하기도 한다. 박물관 자료에 대한 일련의 수집활동은 박물관의 엄연한 권리다. 기증 이후 전시나 교육, 연구 등에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박물관의 몫이다. 박물관 종사자는 선의의 관리자로서 규정과 양심에 따라 자료를 다룰 뿐이다.

셋째, 기증자료는 출처가 분명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자료를 소장하게 된 경위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증하고자 하는 자료가 도굴품이거나 도난품, 장물, 불법거래 등 윤리적이지 못하고 비합법적인 취득 경로가 의심될 때는 기증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하지 않은 자료는 향후 활용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넷째, 기증자료의 수증 여부와 감정평가는 규정에 따라 이뤄진다. 박물관은 규정에 따라 수증자료에 대해 ‘수증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료의 수증 여부를 심의한다. 박물관에 따라 ‘기증유물감정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감정평가를 시행하는 사례도 있다. 자료의 감정평가는 기증이라는 선의의 의도와 달리 다른 목적으로 오용되거나 또 다른 법률적 다툼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접근해야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러 박물관에서는 ‘기증자의 날’ 행사를 연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필자가 일하는 박물관에서도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촐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자료의 기증은 박물관의 곳간인 수장고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료는 박물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근간임을 박물관 종사자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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