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끝난 줄 알았다"…'부활' 손흥민은 연구 대상→EPL 최고 '반전 스타' 우뚝
현지 전문가들 칭찬 일색
[마이데일리 = 심재희 기자] "도대체 어떻게 부활한 거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전설 중 한 명인 게리 네빌은 올 시즌 손흥민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해설가로 활동 중인 그는 손흥민의 부활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솔직히 끝난 줄 알았다"는 표현을 쓰면서 손흥민의 부활 활약을 '미스터리'라고 짚었다. 뚜렷한 내리막을 걸었던 선수가 한 시즌 만에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게 현실적으로 나오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현지 언론들의 반응도 엇비슷하다. 손흥민에게 올 시즌은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지지난 시즌 EPL 득점왕에 오르며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으나, 지난 시즌 추락해 고전했기 때문이다. 23골에서 10골로 리그 득점이 하락한 부분만 봐도 하향세가 느껴졌다.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영혼의 단짝 해리 케인마저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손흥민이 위력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즌 초반 손흥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부활에 성공하며 토트넘을 넘어 EPL 최고 '반전 스타'로 우뚝 섰다. 새롭게 주장 완장을 차고 토트넘을 잘 이끌며 '부활'이라는 글자를 아로새겼다. 토트넘의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팀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EPL에서만 8골을 폭발하며 득점 중간 순위 3위에 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활약과 보이는 성과를 모두 드러내며 날아올랐다.
손흥민은 올 시즌 초반까지 왼쪽 윙포워드로 주로 뛰었다. 기존 포지션을 그대로 소화했다. 이전과 다르게 눈에 띄게 슈팅을 자제했다. 도우미 구실에 충실했다. 하지만 케인의 빈자리가 느껴지자 원톱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곧바로 골 폭풍을 몰아쳤다. 특히, 신입생 제임스 매디슨과 찰떡 호흡을 보이며 놀라운 득점 감각을 뽐냈다. 10라운드까지 토트넘의 무패 행진(8승 2무)을 이끌며 선두 질주의 주역이 됐다.
물론 과거에도 원톱으로 활약한 적이 있긴 하다. 케인의 부상 공백이 생겼을 때 최전방에서 서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한국 대표팀에서 '손 톱'으로 뛰기도 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날개'로 상대 진영을 휘저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하거나, 후방에서 놀라운 스피드를 발휘하며 상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뜨리고 득점을 곧잘 올렸다. 현대축구의 교과서적인 '윙포워드'로서 환하게 빛났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손흥민의 진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앙 앞쪽으로 더 깊숙하게 박혀 공격 정점에 선다. 빠른 발을 활용해 골을 많이 터뜨린 이전과 동선이나 활동 폭이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득점 행진을 벌인다. 스피드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이전보다 좁아졌지만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이고, 골 골결정력은 더 끌어올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스트라이커처럼 쉽게 득점한다. '연구 대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손흥민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탄탄한 기본기와 탁월한 축구 지능이다. 양발을 다 잘 써 어떤 위치에서도 슈팅을 때릴 수 있다. 중거리 슈팅도 가능해 왼쪽 오른쪽 앞 뒤에서 모두 위력을 발휘한다. 공간 활용에 대한 이해도도 매우 높다. 윙포워드로 뛸 때 케인과 동선 겹침을 피하며 좀 더 넓게 움직였다면, 지금은 가장 앞에서 후방 동료들에게 공간을 내준다.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며 팀이 좋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해결사 임무도 담당한다. 본인이 침투할 때는 순간 스피드를 발휘해 좋은 공간을 점유하고 완벽한 피니시를 가한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상대 수비수들을 엄청난 속도로 압박한다. 공수에 걸쳐 모두 기여하는 '손톱'으로 거듭나고 있다.
손흥민은 올 시즌을 앞두고 치른 오프시즌 일정에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지난 시즌은 정말 힘들었다. 토트넘에서 맞이하는 9번째 시즌은 저에게 더 특별한 순간이 될 것 같다." 지난 시즌 아쉬웠던 순간을 곱씹으며 부활을 다짐했다. 새로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케인이 이적하려는 분위기가 퍼져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장으로서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며 날카로운 '손 톱'으로 진화했다.
2015년 토트넘에 새 둥지를 틀고 9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어느덧 30대 나이에 접어 들었다. 치열한 주전 싸움을 거쳐 EPL 최고의 스타로 성장했다. 이제 토트넘 내에서는 고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최근 부상자들이 나와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토트넘이 믿는 구석은 역시 손흥민이다. 과연,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화려하게 부활하며 연구 대상으로 떠오른 손흥민이 위기에 빠진 토트넘을 다시 한번 구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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