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9시간의 재구성… 탐욕스러운 ‘늑대 무리’를 박제하다[서울의 봄 리뷰]

이정우 기자 2023. 11. 15.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영화 ‘서울의 봄’ 22일 개봉… 신군부는 어떻게 묘사됐을까
전두환·노태우 사실적 재현
역사적 인물 우회없이 전면에
주·조연급 모두 합하면 68명
쿠데타 둘러싸고 강렬한 연기
감독“승리 아닌 부끄러운 역사”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은 권력욕으로 폭주한다. 캐릭터를 위해 민머리도 불사한 황정민은 역사의 한순간을 강렬하게 재해석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22일 개봉)은 ‘12·12 사태’를 처음으로 영화화했다. 단 한 문장에서 많은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과오가 분명한 사건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을까. 얼마나 사실적일까. 그래서 전두환, 노태우는 어떻게 나오나?

영화는 대한민국 정권이 신군부로 넘어가게 된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9시간으로 관객을 잡아 끌어와 ‘목격’시킨다. 영화에 깔려 있는 분노와 탄식의 정서는 건조하게 서술된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와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욕망과 이상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힘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에서 책임 있는 실존 인물들을 분명히 ‘박제’한다.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합동수사본부장과 노태건(박해준) 제9보병사단장, 전두광과 초반 대립각을 세우는 정상호(이성민) 육군참모총장 등 주요 인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름과 비주얼에서 실제 인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친구야” “믿어주세요” 같은 기시감 강한 대사가 나오고, “떡고물 다 떨어지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전두광에겐 주변을 잘 챙겼다는 특정 인물의 스타일이 강하게 연상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은 이 영화가 신군부 세력을 ‘박제’하는 영화임을 분명히 한다. 전두광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무리는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는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 이 사진은 신군부 세력이 그날 찍은 실제 사진으로 오버랩된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 시점에선 고발의 낙인이 되는 순간이다.

이 사진은 김성수 감독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발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군사 반란에서 승리하고 자기들끼리 모든 직책을 배치한 다음 기분 좋게 찍은 사진”이라며 “그들이 남긴 승리의 기록이 부끄러운 사진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관객들을 그 당시로 몰아넣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어디까지나 그날의 9시간을 ‘재구성’한 극 영화다. 전두광과 후반 대립각을 세우는 이태신(정우성·사진) 수도경비사령관은 장태완 소장을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가 많이 섞였다. 감독의 말마따나 전두광이 “뜨거운 탐욕 덩어리”라면, 이태신은 “올곧은 선비” 같은 사람. 김 감독은 “전두광과 대비되게 차분하고, 잘 참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성 씨가 그렇다”며 “‘평소 너 하듯이 연기해’란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하나회 내부 모습엔 감독의 상상력이 적극 발휘됐다. 하나회 무리들은 쿠데타가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기세등등했다가 불리해지면 내뺄 생각부터 하는 나약하고 욕심 많은 소인배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순간의 박진감은 욕심에 눈먼 인간 군상을 연기한 수십 명의 베테랑 배우들의 공이다. “30사단의 나쁜 아저씨들”이라고 그들을 칭한 김 감독은 “탐욕스러운 늑대 무리들을 찍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힘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난 일종의 ‘팩션’(Fact+Fiction) 영화라서다. 그간 한국 영화는 근현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땐 보통 주변인이나 사건을 겪은 일반 시민을 주역으로 설정하며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효자동 이발사’나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 영화는 여러모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 사태’를 조명한 ‘남산의 부장들’과 비슷한데, 보다 실제 역사에 가깝게 그려낸 편이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 황정민과 그 못지않은 에너지를 보여준 정우성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들이 저마다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특정 성격을 가진 인물만 68명에 이른다.

김 감독은 “수많은 40·50대 배우들이 자신이 거쳐온 시대를 재현하는 데 의미를 갖고 재능을 쏟아부었다”며 “그림자처럼 쓰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 밀도 있는 장면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