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9시간의 재구성… 탐욕스러운 ‘늑대 무리’를 박제하다[서울의 봄 리뷰]
전두환·노태우 사실적 재현
역사적 인물 우회없이 전면에
주·조연급 모두 합하면 68명
쿠데타 둘러싸고 강렬한 연기
감독“승리 아닌 부끄러운 역사”
영화 ‘서울의 봄’(22일 개봉)은 ‘12·12 사태’를 처음으로 영화화했다. 단 한 문장에서 많은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과오가 분명한 사건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을까. 얼마나 사실적일까. 그래서 전두환, 노태우는 어떻게 나오나?
영화는 대한민국 정권이 신군부로 넘어가게 된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9시간으로 관객을 잡아 끌어와 ‘목격’시킨다. 영화에 깔려 있는 분노와 탄식의 정서는 건조하게 서술된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와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욕망과 이상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힘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에서 책임 있는 실존 인물들을 분명히 ‘박제’한다.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합동수사본부장과 노태건(박해준) 제9보병사단장, 전두광과 초반 대립각을 세우는 정상호(이성민) 육군참모총장 등 주요 인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름과 비주얼에서 실제 인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친구야” “믿어주세요” 같은 기시감 강한 대사가 나오고, “떡고물 다 떨어지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전두광에겐 주변을 잘 챙겼다는 특정 인물의 스타일이 강하게 연상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은 이 영화가 신군부 세력을 ‘박제’하는 영화임을 분명히 한다. 전두광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무리는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는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 이 사진은 신군부 세력이 그날 찍은 실제 사진으로 오버랩된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 시점에선 고발의 낙인이 되는 순간이다.
이 사진은 김성수 감독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발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군사 반란에서 승리하고 자기들끼리 모든 직책을 배치한 다음 기분 좋게 찍은 사진”이라며 “그들이 남긴 승리의 기록이 부끄러운 사진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관객들을 그 당시로 몰아넣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어디까지나 그날의 9시간을 ‘재구성’한 극 영화다. 전두광과 후반 대립각을 세우는 이태신(정우성·사진) 수도경비사령관은 장태완 소장을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가 많이 섞였다. 감독의 말마따나 전두광이 “뜨거운 탐욕 덩어리”라면, 이태신은 “올곧은 선비” 같은 사람. 김 감독은 “전두광과 대비되게 차분하고, 잘 참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성 씨가 그렇다”며 “‘평소 너 하듯이 연기해’란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하나회 내부 모습엔 감독의 상상력이 적극 발휘됐다. 하나회 무리들은 쿠데타가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기세등등했다가 불리해지면 내뺄 생각부터 하는 나약하고 욕심 많은 소인배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순간의 박진감은 욕심에 눈먼 인간 군상을 연기한 수십 명의 베테랑 배우들의 공이다. “30사단의 나쁜 아저씨들”이라고 그들을 칭한 김 감독은 “탐욕스러운 늑대 무리들을 찍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힘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난 일종의 ‘팩션’(Fact+Fiction) 영화라서다. 그간 한국 영화는 근현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땐 보통 주변인이나 사건을 겪은 일반 시민을 주역으로 설정하며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효자동 이발사’나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 영화는 여러모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 사태’를 조명한 ‘남산의 부장들’과 비슷한데, 보다 실제 역사에 가깝게 그려낸 편이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 황정민과 그 못지않은 에너지를 보여준 정우성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주·조연들이 저마다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특정 성격을 가진 인물만 68명에 이른다.
김 감독은 “수많은 40·50대 배우들이 자신이 거쳐온 시대를 재현하는 데 의미를 갖고 재능을 쏟아부었다”며 “그림자처럼 쓰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 밀도 있는 장면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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