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에 ‘박정희’ 말고 지역 정책은 없나요?
[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김규현 ㅣ전국부 기자
‘조국은 다시 박정희 대통령을 부른다.’
지난 8일 대구시 중구 담수회 회관에서 열린 한 토크콘서트 주제다. 독재자 박정희를 여전히 존경하고 추앙하는 일부 지지자들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활동하거나 활동했던 정·관계 인사가 대거 모인 성대한 자리였다. 토크콘서트 주최자는 ‘박정희대통령 동상건립추진위원회’. 이날 콘서트에 앞서 출범식을 연 동상건립추진위 위원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던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통상학부)다. 여기에 김범일·권영진 전 대구시장, 김문수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150여명이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는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도 있다.
동상건립추진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일인 내년 11월14일에 맞춰 대구 도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대구역 광장, 반월당네거리 등을 동상 건립 장소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건립 비용은 시민 모금으로 마련하고, 동상을 세우는 과정은 대구시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대로’를 지정하고 박정희컨벤션센터도 짓는 계획도 밝혔다. 정확히 1년 뒤부터는 실제로 박정희 동상을 마주하며 길을 다녀야 하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박정희를 불러내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인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났다. 이후 12일 만에 대구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또다시 만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관 계단 앞까지 내려와 윤 대통령을 맞이했다”는 대통령실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대구는 선거 때마다 ‘보수 텃밭’으로서 역할을 부여받으며 보수정당의 주 무대가 된다. 아쉬운 점은 죽은 박정희를 얘기하는 이들은 넘쳐나지만, 여전히 이 지역에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을 얘기하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구·경북·강원 지역 통계 사무를 담당하는 동북지방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대구·경북 계속 거주 청년과 수도권 전출 청년 비교 분석’을 보면, 2021년 대구에서는 19~34살 청년 1만9천명이 수도권으로 떠났다. 대구 전체 순유출의 46%를 차지하는 대규모 이동이었다.
이들이 수도권으로 떠난 이유는 단연 일자리 때문이었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과 대구에 계속 거주한 청년을 비교해 보니, 수도권으로 간 청년이 대구에 남은 청년보다 취업 비중이 8.2%포인트 높았다. 수도권으로 간 청년이 대구에 남은 청년보다 대기업·중견기업 근무 비중은 11.1%포인트, 연간 임금 근로소득 5천만원 이상인 취업자 비중은 13.3%포인트 높았다. 통계청은 “저출산 및 인구 유출로 지역 인구 감소가 심화하고 특히 지역 청년 인구의 수도권 유출이 계속되어, 대구시 청년 인구정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통계를 분석했다고 발표했다. 역설적으로 이 통계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듯하다.
수도권보다 일자리 질도, 임금도 낮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박정희 동상 건립’은 어떤 의미일까. 대구를 찾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이들이야 그만큼 손쉽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낡은 정치’를 들고나와 보수 결집을 호소하는 행보가 누군가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걸 한번이라도 생각해보긴 했을까.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한 청년으로서 묻고 싶다. 대구를 향해 ‘보수 표밭’이 되어주기만 읍소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관련 정책을 내놓을 생각은 없는지 말이다.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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