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사무관' MB식 물가 통제 이번엔 통할까?…고금리·고물가 장기화 우려

이대건 2023. 11. 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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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우유 물가 14년 만에 최고…빵 2년 전보다 21.6% 올라

14.3%. 지난달 우유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이만큼이나 올랐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지난 2009년 8월(20.8%) 이후 14년 2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오른 수치다. 1년 사이 설탕은 17.4%, 아이스크림은 15.2%, 커피는 11.3% 각각 올랐다.

기간을 2년으로 늘리면 물가 상승 흐름은 더욱 가파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설탕은 2년 전인 2021년 10월과 비교해 34.5%나 올랐고 아이스크림은 23.8%, 커피는 23% 각각 치솟았다. 빵 물가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올랐는데 2년 전에 비해선 21.6%나 상승했다. 식용유 물가는 1년 전보다 3.6% 오르는 데 그쳤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47.9%나 높은 수준이다.

주요 외식 품목인 치킨의 지난달 물가는 1년 전보다 4.5% 올랐지만 2년 전보단 15.2% 상승했고, 햄버거도 1년 전보다 6.8% 상승했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19.6%) 오른 상태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지만, 지난해에 비해 소폭 내린 품목도 있다. 지난달 라면 물가는 2년 전보다 10% 높았지만 1년 전 대비 1.5% 하락했고, 스낵 과자 물가는 2년 전보다 12.7% 상승했지만 1년 전보다 0.9% 내렸다. 지난달 밀가루 물가도 2년 전보다 무려 36.5% 높았는데 1년 전 대비 0.2% 소폭 내려갔다. 전체적인 물가가 이미 충분히 올라 있는 상태에서 최근 몇 달 사이 소폭 하락한 결과로 보인다.

라면, 과자, 밀가루와 같은 상징적인 물가 품목 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뭘까? 정부가 관련 기업에 압박을 가한 결과다. 그대로 뒀으면 다른 품목처럼 올랐을 텐데 경제부총리까지 직접 나서 라면 가격을 콕 집어 내리게 한 것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빵·라면 사무관에 우유 서기관까지 등장?

정부가 또다시 직접 나섰다. 확실한 시장 개입이다. 정부는 물가 체감도가 높은 28개 품목의 가격을 매일 매일 점검하기로 했다. 그동안 농축산물 14개 품목과 외식 메뉴 5개 품목 등 19개 품목의 가격을 매일 점검해 왔는데 가공식품 9개 품목까지 상시 가격 확인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추가된 품목은 빵과 우유, 스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밀가루 등이다.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기로 했다. 물가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만큼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로선 다급한 것이다.

언론에선 이른바 빵 사무관, 라면 사무관, 우유 서기관이 다시 등장한다고 보도한다. 이전에는 경제부총리가 언론에 직접 출연해 라면 가격 인하의 필요성을 언급하거나 차관과 실·국장이 식품이나 가공 업체를 찾아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 왔다. 앞으로는 과장과 같은 실무급 전담자들이 식품기업을 방문해 간담회를 열거나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현장 물가 대응 수위도 높인다. 언론 인터뷰나 자료 배포만이 아닌 현장 방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장 중심은 현 정부의 민생 챙기기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 지난달 중순부터 식품·외식업체를 전방위로 찾아가 물가 안정을 위한 협조를 구했는데 실·국장 등이 스타벅스·동서식품과 같은 커피 업체까지 찾아가 가격을 무리하게 올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빵 사무관 등장 논란이 일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빵 생산 공장에 가서 일일이 원가를 조사하는 게 아니라 함께 물가 안정을 위해서 협조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물가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2012년 1월 3일)
MB식 물가 대책 실효성 거둘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11년 전 이명박 정부 때 실시했던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와 매우 유사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대 총선을 앞둔 석 달 2012년 1월 국무회의에서 생활 물가 품목별 담당 공무원을 정해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않게 하는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 도입을 주문했다. 이때 이 전 대통령은 "배추 등 생필품 물가가 올라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을 못 봤다며, 서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라며 관련 부처를 몰아세웠다. 시장의 물가 인상 책임을 특정 공무원에게 묻는 셈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물가 예측은 빗나갔다. 유가 상승과 농산물 출하 부진 등 나라 안팎의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그렇다면 MB식 물가 대응은 효과를 봤을까? 인위적 가격 통제는 기업의 편법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정부의 압박에 일단 가격을 동결하거나 소폭만 올리더라도 나중에 한꺼번에 가격을 올릴 수 있다. 또 하나는 가격을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거나 질을 낮추는 '슈링크플레이션' 방식이다. 모두 꼼수 가격 인상에 해당한다. 결국 단기적인 물가 자제 압력은 고금리와 고물가 상황을 더욱 길게 이어지도록 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농산물 가격이 대체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섰고 유가도 최근 조금 하락하고 있다"며 "11월에는 3.5~3.6% 안팎의 물가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다만 시장 논리에서 벗어날 경우 정부로선 개입의 명분이 생긴다. 반대로 정부 개입의 명분이 부족하면 올라야 할 시장 가격은 언젠가 다시 오른다. 우린 이를 과거 이명박 정부의 인위적 물가 통제 정책 때 충분히 경험했다. 그때 물가를 눌렀지만 결국 올랐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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