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를 의심했다[편집실에서]

2023. 11. 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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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김포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횡재세 논의 등 일단 ‘지르고 보자’식 인기영합주의 발언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이 정도까지 나아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정부가 식당·카페의 일회용품 사용규제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1년 가까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해온 제주도와 세종시 지역 상인들은 완전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습니다. 지구를 살리자,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매출 감소, 소비자들의 불편 호소를 무릅쓰고 자율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온 자영업자들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하지요.

손님들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역주행 정책에 어지럼증을 호소합니다. 며칠 전, 회사 근처에서 평소처럼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다 “남은 건 들고 가겠다”고 직원에게 요청했습니다. 여느 매장과 달리 그 매장은 종이컵(플라스틱 코팅) 제공에 단서를 달더군요.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내야 이용 가능하고, 종이컵을 반납하면 환불해준다는…. 알고 보니 친환경 커피숍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그 자리에 선 채로 머그잔의 커피를 한 번에 쭉 들이켰습니다. 번거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매장 정책의 대의에 공감했기에 군소리 없이 따랐습니다. 많은 소비자가 그랬죠.



자라나는 아이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쏟아집니다. 달라진 건 없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는데 정책은 갑작스레 과거로 회귀해버렸습니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당장 표가 아쉽다고,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대변한답시고 이렇게 정책을 180도 바꿔버리면 고삐 풀린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를 누가 제어할 수 있을까요. 휴대도 간편하고, 위생상 깔끔한 느낌마저 주는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누가 마다할까요. 기껏 자리 잡나 싶던 실내 점포에서의 머그잔 사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일회용 제품이 넘쳐나겠지요. 익숙한 플라스틱 빨대 대신 눅눅한 느낌의 친환경 종이 빨대를 내놓을 용기 있는 매장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는 환경부의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환경정의를 무너뜨리는 처사다. (중략) 환경부는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기후위기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폐기물 감량과 일회용품 사용규제를 단호하게 시행하라.” 녹색소비자연대가 11월 8일 낸 비판 성명의 일부입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환경친화적 규제 흐름에 동참 중인데, 한 줌 권력을 움켜쥐어보겠다고 미래세대를 상대로 벌이는 이런 ‘조삼모사’식의 잔꾀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결국 이번 정책은 언젠가는 다시 뒤집힐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문제는 그때 가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점입니다. 소탐대실이라고 했지요. 순간의 불편과 고통을 모면해보겠다고 공동체 전체를 수렁으로 몰고 가는 이 위험천만하고도 무모한 결정은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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