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구 집중의 핵심 키워드, 20대 여성의 상경
2017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는 경상남도 남해군 출신 1988년생 윤지호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속 지호는 반동적이다.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을 거스른다는 뜻에서 그렇다. ‘여자는 당연히 집 근처 교대에 가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몰래 서울 대학에 원서를 넣고, 입학식 전날 야반도주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는 친구들과 달리 드라마 보조 작가의 길을 택한다. 월세방을 전전하느라 생계 걱정에 연애를 포기했지만, 수제 맥주라는 자신의 취향만은 포기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당시 드라마는 서울에 거주하는 2030 1인 가구 여성의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호의 삶은 ‘변화와 반동’이었지 ‘평균이나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 속 지호의 삶은 더 이상 ‘반동적’이지 않다. 2023년 현재, 지호보다 10~15살 어린 20~24세 여성은 더 많이, 더 빨리 서울로 향하고 있다. 지방 소멸과 청년인구 유출이 상수가 된 현재,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 청년인구 포섭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청년들이 어떤 경로로 서울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정작 서울에 이주한 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설익은 분석만 부유한다.
〈시사IN〉은 도시데이터 분석가 신수현씨와 함께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주민등록 인구이동 데이터를 분석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서비스(MDIS)를 이용해 인구이동통계를 연령, 지역, 세대주 여부, 가구원 수 등으로 쪼개고 재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가 뭉뚱그려서 ‘청년인구의 서울 이주’라고 지칭했던 현상이 ‘2015년부터’ 그리고 ‘20대 여성 인구를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상을 우리는 다시 규정해야 한다. 현시점 비수도권 지방의 인구 유출 문제는 ‘젊은 여성의 급격한 서울 이주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통계청의 인구이동통계는 전입신고를 기반으로 한다. 전입신고는 적극적인 이주의 기록이다. 고시원이나 기숙사, 지인의 집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주거 이동이 아니라 정식으로 내가 속한 행정구역을 바꾸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전입신고 데이터는 이주를 보수적으로 집계한다. 이 전입신고 데이터에서 인구이동이 급격하게 관측된다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한 이주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인구이동 데이터를 성별, 연령별(5개년)로 쪼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흐름을 분석해봤다. 흔히 말하는 ‘상경’이란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서 자취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서울 밖에서 살던 청년인구 가운데 서울로 이주한 20~34세 1인 이동을 따로 추렸다. 그 결과가 아래 〈그림 1〉이다. 그림에서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 유독 20~24세 여성의 서울 이주가 급속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무렵부터 25~29세 여성의 이주 역시 함께 상승곡선을 그린다. 20대 여성 전반의 서울 이주가 2015년 이후 일종의 ‘대세’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상경’은 20대 후반 남성이 주도한 흐름이었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 직장을 잡는 생애 모델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그림 1〉에서도 2000년대 25~29세 남성의 서울 이주 흐름이 다른 모든 성별·연령별 집단을 압도한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부터 폭증한 20대 여성 이주의 흐름은 이제 ‘대세’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20대 전체를 놓고 보면 여성의 서울 이주는 남성을 넘어섰다. 특히 20~24세 여성의 서울 이주는 이제 25~29세 남성의 서울 이주에 근접한다. 드라마 속 지호의 삶은 더 이상 ‘반동’이 아니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초반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구이동이 되었다.
이번에는 이동의 범주를 조금 달리 설정해보자. 비수도권에서 수도권 전역으로 이동하는 청년인구의 흐름은 어떨까? 〈그림 2〉에서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서울만 놓고 본 〈그림 1〉과 큰 흐름은 비슷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남녀 모두 20대 1인 이동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이 중에서도 20~24세 여성의 수도권 이주가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이동의 수’만 놓고 살펴봤다. 그런데 감안해야 할 지점이 하나 더 있다. 20대 인구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2022년 기준, 20~24세 총인구는 약 302만명인 반면, 30~34세 인구는 약 325만명이다. 10년 동안 ‘20대 초반 인구’는 20만명이 줄었지만, 서울로 이주하는 20~24세 1인 가구의 수는 1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나라 전체에 청년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 서울로 쏠리는 비중은 전보다 늘었다. 특히 이제는, 여성이 더 많이 쏠린다.
■ 여성일수록,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서울 밖으로 나가는 청년인구도 있다. 서울의 밀도가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특히 청년인구의 밀도가 어느 정도로 유지되는지는 전입인구에서 전출인구를 뺀 ‘순전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은 성별, 연령 구간별 서울 순전입 인구를 계산한 표다. 막대그래프에서 ‘여성 20~24세’ 부분이 차지한 비중을 살펴보자. 2012년부터 20~24세 여성은 서울 순전입의 규모가 가장 큰 집단이다. 서울을 등지는 여성의 비율, 즉 전출인구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20~24세 여성의 순전입은 2만4322명이다. 20~24세 남성이 1만3682명, 25~29세 남성이 1만3431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청년인구를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 20대 초중반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점점 이주가 줄어드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에서 행정동 경계를 넘어 이동한 사람은 모두 615만명이다. 이는 958만명이 이동한 2002년에 비해 약 36% 감소한 수치다. 흥미로운 것은 전체 이주는 줄어들지만 ‘혼자 이동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에는 ‘혼자 이동하는 사람들’이 약 300만명이었지만, 2022년까지 그 숫자는 344만명으로 증가했다. 이제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둘 중 하나(56%)는 ‘혼자’ 이사한다. 이런 이주의 변화 속에서 서울로 향하는 여성 1인 이동은 점차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림 4〉를 함께 살펴보자. 전체 이동 인구 대비 20~34세 1인 가구 서울 이주의 비율을 성별, 나이대별로 그린 그래프다. 2015년 서울로 이주한 20~24세 여성은 전체 이동 인구의 0.35%에 그쳤다. 그러나 이 비율은 2010년대 후반부터 크게 높아져 두 배 수준인 0.72%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25~29세 여성의 서울 이주 비율도 0.38%에서 0.64%로 증가했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구이동 가운데 1.36%가 20대 여성이 혼자 자취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이주다. 언뜻 큰 숫자가 아닌 것 같지만, 이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법하다.
■ 20대 여성은 왜 서울로 향하는가
20대 여성 인구의 서울 이주 폭증은 아직 낯선 이슈다.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치적 논쟁에서 이들 인구에 대한 정책이 심도 깊게 논의된 적은 드물다. ‘현상 인식’에서 지역별로 온도차가 있다. 오히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여성 인구 유출이 더 큰일’이라는 위기감을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막상 수도권은 ‘흘러 들어오는 인구의 성비’를 잘 따지지 않는다. 반면 유출을 겪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전출해 나가나 살펴봤더니, 20대 여성이더라’ 하는 분석이 등장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사회에서는 20대 여성 인구의 유출 원인으로 ‘일자리’를 지목한다. 20대 여성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3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토론회’는 아예 토론 주제를 ‘충북 청년 여성의 인구 유출 현황과 정책과제’로 잡았다. 지난 10년간 전출 데이터를 살펴보니, 청년 남성은 순유입되었지만 청년 여성이 순유출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이 자리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일자리다. 성별 임금격차, 취업을 위한 직무 경험 기회 부족,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이 지역의 청년 여성 인구 유출의 원인으로 꼽혔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흐름이 201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된 것일까? 비수도권 지역에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어째서 최근 몇 년 사이에 20대 여성의 서울 집중이 가속화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산업이 변했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20대 여성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산업과 일자리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를 쓴 장민지 교수는 2030 여성의 서울 이주와 주거 변화를 연구한 인물이다. 장 교수 본인도 20대에 서울로 이주한 경험이 있는 1980년대생 여성으로, 지금은 경남 창원에서 20대 학생들을 가르치며 상담하고 있다. 장 교수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콘텐츠 산업이 부상하면서 20대 여성이 취업을 원하는 일자리를 비수도권 지역에서 찾기가 어려워졌다. 미디어나 디자인, IT 관련 업종 취업 자리는 서울 말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1960∼1970년대 20대 여성의 서울 이주는 ‘생산직 일자리를 찾기 위한 여공의 이주’가 주류였다. 시대가 변했고, 직종도 바뀐다. 여성이 취업을 원하는, 2010년대 들어 확대된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 일자리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포진해 있다. 대표적 예시가 콘텐츠 산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음악·게임·방송·출판·광고·지식정보 등 각종 콘텐츠 산업 종사자 59만명 가운데 약 26만명이 여성으로 집계되었다. 수도권 집중도가 강할 수밖에 없는 직종들이다.
진학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예시로 든 〈이번 생은 처음이라〉 속 지호 아버지의 인식은 2000년대까지 유효했다. 딸이 공부를 잘하더라도 지역 사범대나 교대 진학을 권유하고 실제로 인기도 높았다. 비수도권 지역 사회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는 방식은 1980년대생까지는 나름 인기 있는 선택지였다.
그러나 지역 인구 감소와 더불어 이러한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수요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가 거점 국립대학인 전남대학교는 2021년 사범대 입학생 모집에서 처음으로 미달 사태를 겪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자원도, 남성 차지가 되는 경우가 잦다. 장 교수는 “지역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20대 여성도 많다. 지역에서는 그나마 여성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남성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젊은 여성이 서울로 이주하고 난 뒤에도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다”라고 말한다.
2010년대 중반에 확대된 사회문화적 변화도 여성의 서울 1인 가구 이주 확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MBC 〈나 혼자 산다〉와 같이 1인 가구의 생활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이 시기에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고, ‘직방’ ‘다방’ ‘오늘의집’ 같은 부동산 관련 플랫폼 서비스의 등장, 전세대출 제도의 확대 등도 201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변화다. 게다가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등장으로 대도시 서울에서 일상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비수도권 지역과 어떤 인프라 차이를 보이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 인프라에 대한 수요는 2030 여성에게 핵심 요소가 된다. 이들이 현재 주요 콘텐츠 산업의 주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 무기력한 ‘인구 댐’ 광역시
1994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의 사례를 살펴보자. 대전에서 자란 1994년생 ‘당최(@dangchoi_)’씨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원룸으로 이사했다. 당최씨는 ‘강남 원룸에서 혼자 살기’를 주제로 인스타그램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로 ‘상경’한 20대 여성 1인 가구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의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팔로어도 1만명을 넘어섰다.
같은 나이인 치과위생사 ‘나루(@naru.diary)’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부산에서 이주해온 그 역시 지난해 처음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인스타그램에 자취 생활을 담은 웹툰을 올리고 있다. 나루씨는 원래 부산 지역 종합병원에서 일했다. 함께 근무하던 치과 과장이 서울에 병원을 개원하면서 주거비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스카우트했다. 연고가 없는 낯선 환경으로 이주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그는 “부산보다 크고 인프라가 많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다. 다만 비싼 물가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의 이주에는 공통점이 많다. 새로운 도전을 원하며 서울로 이주해왔다. 디자인과 보건의료 영역이라는 각각의 직역 역시 서울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 본업 이외에 이주 생활을 주제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점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래 살던 고향이 한국 사회에서 나름 규모가 큰 광역시라는 점도 두 사람의 이주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지점이다.
〈그림 5〉는 2022년 한 해 동안 1인 가구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동경로 분포를 보여준다. 〈시사IN〉은 이주의 공간적 형태를 서울, 경인, (인천 제외) 광역시, 그리고 기타 비수도권 중소도시로 나누었다. 비수도권 광역시와 중소도시에서 각각 어떤 형태로 이주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접한 광역시로 향하는 이주’다. 전통적으로 광역시는 인근 지역의 1차 이주지로 손꼽혀왔다. 대도시로서 지역에 교육·의료·서비스 인프라를 제공하고, 자생적인 산업을 확보한 곳도 많다. 그래서 광역시는 지역에서 일종의 ‘인구 댐’ 역할을 한다.
20~24세 남성, 25~29세 남성의 경우 ‘인접한 광역시’로 이주하는 흐름이 여전히 강고하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달랐다. 20~24세 여성은, 특히 비수도권 중소도시 출신 20대 여성은 주변 광역시에서 기회를 찾기보다는 곧바로 서울로 향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광역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인구도 많다.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장 상경하는 풍경, 이것은 비수도권 광역시가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와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대 남성이 지역에서 경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비중이 상당한 반면, 20대 여성의 경우 경인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이는 주거 환경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20대 여성의 경우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울 것, 최대한 안전한 주거 형태일 것, 사람들이 북적이는 환경일 것 등을 주거 선택의 주요인으로 꼽는다. 그래서 비싸더라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좁더라도 서울 내에서 주거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 인구·도시 이슈의 중심에 선 20대 여성
20대 여성의 서울 쏠림은 여러 후폭풍을 낳는다. 특정 세대, 특정 연령대의 공간적 쏠림은 세대 간, 성별 간 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에서 1인 가구로 거주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 높은 주거비와 물가를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일자리가 많다고 해서 그 일자리들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20대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는 각종 서비스 일자리, 특히 IT, 콘텐츠, 서비스 업종의 경우 이직이 잦고 비정규직도 상당하다.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면서 안정적으로 자산을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세대 간, 성별 간 자산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될 우려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경 이동’조차도 계층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장민지 교수는 “서울에 첫 주거지를 구하는 것처럼 초기 정착 과정에서 계층적 격차가 반영된다. 집에서 지원해주는 자원이 없을 경우, 고시원이나 지인의 집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주거를 택하거나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상경 자금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다. 앞서 소개한 당최씨나 나루씨도 집안이나 직장의 주거비 지원이 없었다면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서울로 이주하는 데에는 원래 거주하던 지역의 자원이 쓰인다. 서울은 그러한 개인의 청춘과 자원을 빨아들이며 최첨단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여성이 취업을 원하는 직장을 단기간에 비수도권 지역에서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원래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수도권이 독점하는 자원을 분배·분산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국가전략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그에 앞서 현시점에서 접근 가능한 해결책은, 지역에 존재하는 남녀 성별분업을 줄이고,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를 나눌 때 남녀 간 차별을 줄여나가는 것뿐이다.
수도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주한 청년의 삶을 그대로 두고만 볼 것이냐를 물어야 하는 시점이다. 더 많은 주거비와 더 많은 생활비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은 전국의 청년이 가진 젊음과 그들의 가족이 가진 사적 자원을 빨아들이며 성장하고 있다. 서울로 이주해 생활하는 청년이 겪을 장기적인 격차를 좁히고 비수도권의 자원 배분 요구(산업과 일자리, 인프라 등)에 전향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그나마 공생하며 살 길이다. 이 같은 자원 배분은 결국 정치가 할 일이다. 서울의 범위를 넓히는 데 골몰하기보다, 서울이 무엇 때문에, 누구 덕분에 최첨단 도시로 기능하게 되었는지를 자각하는 게 우선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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