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축 끝’ 조짐에 日에 쏠린 글로벌 시선… BOJ는 ‘출구전략’ 준비 중

박소정 기자 2023. 11.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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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물론 원화에도 힘 못쓰는 ‘엔화’
10월 BOJ 정책회의 ‘기폭제’로 작용해
시장은 “실망스런 YCC 수정”이라지만
우에다 ‘물가’ 발언 보면 ‘출구전략’ 근접
환율 변동이 물가 전망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정책 변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의 10월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 중

엔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33년 만에 최고치(151.94엔)를 눈앞에 두고 있고, 원·엔 환율(100엔당)도 870원대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길었던 ‘긴축 사이클’의 종료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은 이제 유일하게 ‘초완화’ 통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표면적으론 “완화책을 유지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의 물가에 대한 발언을 바탕으로 완화 정책을 끝내기 위한 ‘출구전략’ 준비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15일 도쿄 외환시장 등에 따르면, 엔화 가치는 지난 13일 연중 최고치인 달러당 151.84엔까지 장중 치솟았다. 엔·달러 환율이 지난해 10월 21일(151.94엔) 당시보다 더 오르면 1990년 이후 33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게 된다.

엔화 가치는 올해 10월 들어 1달러당 150엔으로 떨어지더니, 한 달여째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1월 들어선 152엔에 육박하면서 오히려 엔저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폭락한 엔화는 원화와 비교해서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 6일 100엔당 867원으로 주저앉으며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재는 소폭 올라 870엔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 10월 BOJ 통화정책회의 이후 더욱 바닥 기는 円

10월 30~31일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 결과가 최근의 이런 흐름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BOJ는 기존 통화정책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수익률곡선관리(YCC) 정책을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단기 금리를 -0.1%로 유지하고, 장기 금리(10년물 국채)는 기존 상한선인 1%를 일정 수준 넘어서도 용인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이후 3개월 만의 YCC 정책 수정이었다. 다소 긴축적인 방향으로 움직임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는 온도 차이가 있다. 시장은 이번 정책회의에서 BOJ가 좀 더 강력한 궤도 수정 행보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었다. 대폭적인 금리 상한선 상향 조정, 나아가 사실상 ‘YCC 정책의 폐지’ 정도가 선언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결국 시장에선 이번 발표를 “미세한 수준의 수정에 그쳤다”고 평가했고, 엔화를 투매하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정책회의 이후 이어진 우에다 가즈오 총재의 발언에도 급격한 긴축 선언은 없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철회하거나 단기금리 정상화를 결정하기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남아있다”면서 “이 거리가 얼마나 될지, (정상화까지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발언했다.

우에다 총재는 또 지난 6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지역 비즈니스 리더 회의 연설에서 “10년물 국채금리가 1%를 급격하게 넘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말아 달라”며 “지난주 발표한 새로운 YCC 정책에서도 대규모 채권 매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물 국채금리가 1%를 크게 뛰어넘을 경우 해당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금리를 떨어뜨리는 개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의 틀을 이어갈 것임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일본 도쿄의 한 시장에서 한 남성이 생선을 구매하고 있다. /로이터

◇ “물가 목표 달성” 긍정 입장 선명… 정책 전환 준비태세

우에다 총재의 대외적 발언은 ‘신중한 톤’을 유지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출구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평가한다. BOJ가 7·10월 YCC 정책에 대해 미세조정을 거듭한 것이 시작이었고, 이번 정책회의를 통해 물가 전망을 수정한 것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BOJ는 2024년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8%(중앙값)로 전망했다. 3개월 전 예측한 1.9%에 비해 대폭 올려 잡았다. ‘2% 물가 목표 달성’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완화정책을 종료하기 위한 명분을 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6일 나고야 회의 연설을 통해서도 “물가 목표치 달성 정확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며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강해져 소비자물가의 기조적인 상승률이 2%대로 서서히 높아질 것”이라고 발언했다.

물가 목표 달성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이 연일 선명해지는 모습이다. 블룸버그는 “우에다 총리의 발언이 물가 목표 달성에 있어 더욱 자신감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런 메시지는 때가 오면 일본 금융정책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선 내년 3~4월쯤 BOJ가 완화정책에서 벗어나 긴축 기조로 전환하는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당초 일본 경제 전문가들이 출구전략 논의가 시작될 시기로 예상했던 내년 하반기 이후에 비해 수개월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다만 그사이 ‘엔저’가 더욱 심해지면 BOJ의 계획표보다 더 빨리 출구전략을 시작하라는 외부 압력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선진경제부장은 “통화정책 기자회견에서도 우에다 총재가 환율 등 외부 요인 영향을 많이 언급한 만큼,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후 달러가 급격한 강세를 보이는 등 외부 요인이 돌출되면 BOJ의 태도에 더욱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갑자기 모든 정책을 조정하면 시장 반응이 클 수 있다 보니, 조금씩 정책 전환을 위해 준비하는 단계의 일환이라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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