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대로 알자…똥은, 무서워서 피한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기자 2023. 11.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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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똥과 두려움의 상관관계
인간의 장은 박테리아를 비롯한 다양한 미생물로 가득 차 있다.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건강 유지에 기여하며, 여러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됐다.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Donny Bliss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병원균을 더 잘 번식시키는 대변, 더러운 게 아니라 유전자가 두려워하는 것일 뿐
커다란 벌레를 보면 빨라지는 심장박동,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난 아시아인 기피 현상…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활동하는 유전자의 ‘두려움’이 우리에게는 ‘혐오’라는 감정으로 발현된 것
집단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왜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갖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피하고 싶은 사람이나 대상이 있을 때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말이다. 심정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말일 수 있으나, 사실 똥은 음식이 소화되고 난 찌꺼기로서 그 자체로는 딱히 더러울 이유가 없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도 있는데, 개똥은 몰라도 낙타 똥은 약효가 있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프리카를 침략한 독일인들이 이질로 고생할 때, 현지인들이 이질에 걸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낙타의 똥을 먹는 것을 목격했다. 낙타 똥 안에 있는 고초균이 이질균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람의 똥은 실제 약으로 사용된다. 염증성 장질환 등으로 장기간 항생제를 복용하면 장내 세균계가 망가짐에 따라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 균의 증식으로 심각한 장염을 앓을 수 있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대변이식의 성공률은 90%로 보고될 정도로 치료 효과가 크고 안전하다. 최신 항암치료에서도 대변이식이 시도되고 있다. 면역항암제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의 대변을 면역항암제 내성 환자에게 이식함으로써, 암에 대한 면역력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 생태계를 살아있는 상태로 옮겨 이식받은 사람의 장 건강과 면역력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건만, 왜 우리는 그토록 똥을 싫어하는 걸까? 진화론적으로 설명해보자.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화두는 생존과 번식인데, 특히 생존을 유지해야만 번식도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문명의 보호를 받지 못한 우리의 조상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능력 중 하나는 위험한 대상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대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복잡하고 정교한 이성적 판단이 아닌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위험한 것에 대해 안전하다고 잘못 판단하여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사실은 안전한 것에 대해 위험한 것으로 과잉 대응하여 살아남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는 잘못된 대응으로 손해를 보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일단 안전한 쪽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비롯된 정서적 기제가 혐오다. 예를 들어 우리가 뱀, 쥐, 거미, 말벌, 바퀴벌레 등을 보면 발생하는 강력한 기피 심리가 이것인데, 의학적 도움이 없던 과거에는 이들의 독이나 병원균이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살던 시대에는 뱀과 비슷해 보이는 무엇이든지 발견되면 재빠르게 피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가까이 다가가 탐색하고 확인하게 만드는 유전자보다 훨씬 많이 살아 남았던 것이다. 물론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관찰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훌륭한 자질이지만, 이러한 자질이 생존과 번식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지 않을뿐더러 자연선택으로 선택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있지 않았다. 자연선택이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학적 자질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점차적으로 다른 변이들을 제치고 퍼져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조상들의 생존을 도왔던 유전자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은 당장 내 생명에 지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커다란 벌레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된다.

생명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분비물이나 배설물 역시 본능적 기피 대상이다.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생성되는 호흡기 비말이 주된 감염 경로라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누가 침을 뱉는 모습이나 혹은 누군가가 먹다 남긴 음식을 보고 생기는 거부감은 이런 과학적 지식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대변의 냄새나 모습에 대한 혐오가 더욱 강력한 이유는, 침이나 다른 배설물에 비해 야생 상태에 방치되어 있으면 병원균이나 기생충이 번식하기에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피 기작이 병원균에 의한 오염에서 비롯되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메커니즘이 자연선택되어온 것이다. 한마디로 똥이 실제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두려워하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더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전자의 의도가 어떻게 인간의 감정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지 보게 된다. 아무리 똥이 실제로 더럽지 않다는 것과 유전자의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어도, 우리의 똥에 대한 혐오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관할하는 유전자의 활동을 우리의 감각기관은 감지해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몸 안의 유전자들이 생존하고 번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것은 유전자가 가진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감정적 만족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도 ‘내 유전자를 번식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결혼하고 양육을 하지 않는다. 결혼과 양육은 이성에 대한 성적 이끌림과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현대인들은 피임이라는 방법으로 유전자의 목표와 감정적인 만족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을 기피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두려움은 혐오라는 감정으로 발현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 가지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똥을 혐오하는 건 대변이식을 받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빼면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건 이러한 기피성의 혐오가 손쉽게 사람으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는 오늘날의 익명 사회와 달리 인류 역사의 거의 대부분에서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소규모의 혈연, 지역 집단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을 미지의 경계 대상으로 간주해야 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상대가 병을 옮길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안전 최우선의 진화적 전략, 즉 일단 병을 옮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동실험에서 세균, 전염병, 질병 등을 연상케 하는 사진을 보고 나면 이민자나 이민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행동실험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 곳곳에서 발생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사건들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차별적 태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으로 ‘암묵적 연합검사(implicit association test)’라는 것이 있다. 이 검사에서는 좋아하는 대상과 긍정적인 단어가 연합되고 싫어하는 대상과 부정적인 단어가 연합되는 정도를 테스트를 통해 측정한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암묵적 연합검사에서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를 분류하는 자판을 누르는 것과 흑인과 타 인종을 분류하는 자판을 누르는 반응속도를 측정하여 비교해보면, 평소 인종차별적 태도를 의식적으로 가지지 않은 참가자들이라도 흑인과 부정적인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더구나 이 실험은 타 인종에 대한 노출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 인종에 대한 경험이 많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더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런 편견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험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에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인종을 구별할 때 다른 특성들보다 특별히 피부와 머리카락의 색, 생김새, 체형과 같이 ‘곧바로 눈에 띄는’ 표지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인종차별이 진화적 본능에 의해 생성된 혐오와 기피 기제의 여러 결과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리처드 르원틴
데이비드 라이크

이렇게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인간의 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최근 사회과학에서는 인종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사회적 개념일 뿐이라는 믿음이 정설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 시발점이자 이를 직접 뒷받침하는 거의 유일한 연구결과는 1972년 리처드 르원틴이 발표한 논문인데, 그 내용인즉슨, 7개 인종에 대한 유전자 변이를 분석한 결과 인종 내에서의 차이가 85%를 설명하며 인종 간의 차이는 15%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리처드 르원틴은 저명한 유전학자로서, 특히 과학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많은 목소리를 냈던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동기는 정의로웠겠으나 1972년 연구는 과학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었다. 최근의 DNA 분석 기술과 분류 기법을 이용하면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인종을 분류할 수 있다.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크 하버드대 교수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논한 바와 같이, 비록 선한 의도라고 할지라도 집단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적 발견이 인종주의자들에 의해 이용될 근거만 제공해줄 뿐이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별을 해결해나가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 문제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인구통계학에서는 여성 한 명이 평생 가지는 평균 자녀수가 최소한 2.1은 되어야 안정적으로 인구가 유지된다고 본다. 2022년 한국의 수치는 0.78에 불과했는데 이 수치가 1보다 낮다는 것은 다음 세대의 숫자가 부모 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당장 우리나라가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 이민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 되었다. 존 윌모스 유엔 인구국장은 지난 6월1일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대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민은 (한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들에서 인구 증가의 유일한 원동력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히 단일민족 의식이 강한 한국이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여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뒤따르는 갈등을 빠르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본능적으로 다른 인종에 경계심을 갖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성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사랑이다. 그런데 요한일서 4장 18절에는 사랑에 대한 상당히 심오한 묘사가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라는 구절이다. 똥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진화 심리에 대한 지식 없이 기록된 경전이지만,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과연 우리 인류는 사랑의 힘으로 유전자가 주는 두려움을 내어쫓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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