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매니저입니다”…5060여성, 플랫폼노동 몰려간 이유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지금까지 집에서 해온 게 청소인데, 돈 받고 하면 더 좋잖아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이 플랫폼 참 멋있지 않나요?”
10여년 전 둘째 아들 초등학교 6학년 때 백화점 판매 직원으로 첫 경제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아무개(55)씨는 최근 일자리를 하나 더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생활비 부담이 커져서다. 일주일에 두 번인 휴일을 이용해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와중 이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수기 코디 언니’로부터 ‘청소 플랫폼 매니저’를 추천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나이가 더 많아지면 더는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한테 돈 받으면서 손주들 키우면서 살기는 싫다. 똑같은 살림을 해도 돈을 벌면서 당당하게 체력이 닿는 데까지 일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북구 중장년층 일자리 지원센터 강북50플러스센터 2층 강의실은 이씨처럼 ‘청소 매니저’가 되기 위해 찾은 5060 중장년층 여성들로 북적였다. 2017년 출시된 청소·가사노동 서비스 플랫폼 ‘청소연구소’ 소속 청소 매니저는 올해 초 10만명을 넘어섰다. 기존 인력사무소의 가사도우미가 제공하던 청소 서비스를 시스템화해 이용자들에게 균일한 품질의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차별점을 뒀다. 또한 청소연구소 앱을 통한 빠른 예약과 결제, 1회 1~2시간 서비스 제공 등 청소서비스 이용 장벽을 낮췄다.
청소연구소는 “전체 매니저 중 80% 정도가 50∼60대 중년 여성 주부들로, 업무 환경이나 급여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며 빠르게 가입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날 청소 매니저 교육 1교시는 고객 대응 매뉴얼, 2교시는 청소 방법, 3교시는 플랫폼 앱 이용 방법 순으로 진행됐다. “어색하셔도 따라 하셔야 입에 붙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는 청소연구소 매니저입니다’ 한번 해볼게요.” 신규 매니저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의 구령에 맞춰 이날 교육에 참여한 25명의 중장년 여성 교육생들은 연신 “네, 고객님” 대답을 하며 교육에 열중했다.
하루 3시간씩 노인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최아무개(55)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지난 10년 동안 경력단절이 돼, 요양보호사 같은 서비스 직종의 일자리밖에 구할 수 없다. 요양보호사로 풀타임 일을 하기엔 이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단시간으로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청소매니저 일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 매니저 3년 차인 이대향(65)씨는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어 풀타임으로 일할 수가 없는데, 앱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하며 돈을 벌 수 있어 만족한다.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 정도 근무한다”고 했다.
청소연구소는 “매니저 1인당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20시간이며,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거나 ‘엔(N)잡러’로 활동하는 비중도 35%에 달한다”며 “플랫폼 노동자들의 복지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위해 파손손해보험을 비롯한 성과급, 경조사, 명절선물, 독감 예방주사, 대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서비스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제공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 증가분(전년 8월 대비 18만6천명) 가운데 60살 이상 여성이 62.4%(11만6천명)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은 “진입이 자유롭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게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장점이다. 플랫폼 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사회 안전망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특히 중장년 여성들의 임금 격차 문제는 플랫폼 노동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 개별 플랫폼 업체가 내놓는 지원 수준이 아닌, 사회보험이나 최저소득 보장 등 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편, 노동시간 기록이나 이용자 연결 등 청소매니저 전체 활동은 모두 휴대전화를 이용한 앱으로 이뤄진다. 이날 만난 중년 여성들은 “이젠 새로운 앱이나 기술이 두렵지 않다. 생존을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청소매니저 관계자는 “5060 중장년층 매니저들을 위해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앱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장애인 400명 직업 뺏는 서울시…“월급 75만원도 끝”
- 고성서 로봇이 사람 죽인 지 일주일…채소 상자와 구분 못 해
- 20㎏ 원단 수십개 아래 깔린 아내…출근 뒤 돌아오지 못했다
- 인요한 “윤 대통령 쪽 ‘거침없이 하라’ 신호”…용산이 당무 개입?
- “가난한 XX…” 식당 갑질 모녀, 벌금 이어 1400만원 배상해야
- 3개월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등산객…곁엔 14살 반려견이 있었다
- 골령골, 정말 그곳에서 7000명이 죽었는가 [본헌터㊵]
- “‘땡윤 방송’ 만들기 정점에 이동관이 있다”
- 대구·경북에 ‘박정희’ 말고 지역 정책은 없나요?
- “최수종·하희라 살던 전북 진안 집에서 한달살기 하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