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월대(月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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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밤에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월대(사진) 새길맞이' 행사가 있었다.
이번 행사는 잘못 제작된 광화문 현판의 교체와 일제강점기 소실되었던 경복궁 월대의 복원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창덕궁과 덕수궁의 월대는 이미 복원이 되었고 이번에 경복궁의 광화문 월대를 복원한 것이다.
또한 경복궁 중건 때의 공사일지인 영건일기 3권 17쪽에 '광화문의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이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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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밤에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월대(사진) 새길맞이’ 행사가 있었다. 이번 행사는 잘못 제작된 광화문 현판의 교체와 일제강점기 소실되었던 경복궁 월대의 복원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창덕궁과 덕수궁의 월대는 이미 복원이 되었고 이번에 경복궁의 광화문 월대를 복원한 것이다. 또한 경복궁 중건 때의 공사일지인 영건일기 3권 17쪽에 ‘광화문의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번에 현판을 기록대로 복원한 것이다. 예전에 복원할 때 기록대로 하지 않고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현판을 제작한 것이 필자도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니 다행이다.
월대(月臺)는 궁궐·종묘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말한다. 대개 장방형의 넓은 단(壇)으로 일정한 길이로 가공된 화강석을 층층이 쌓아 만들고 건물의 전면(前面)에 놓이며 그 높이는 약 1m 전후이다. 때로는 2단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고, 상부는 전(磚)이나 박석(薄石·넓고 얇게 뜬 돌)을 깔며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는다. 궁중의 하례(賀禮)·가례(嘉禮)·제례(祭禮)와 같은 큰 행사 때 사용하기도 하고 건물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월대의 이름은 월견대(月見臺), 즉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근정전·인정전·명정전·중화전·숭정전), 주요 전각(강녕전·교태전·대조전 등)과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에서도 볼 수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종묘의 정전은 태조 때에 정면 7칸, 영녕전은 세종 때에 정면 6칸으로 지어졌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하게 되어 마지막에는 정전은 19칸, 영녕전은 16칸의 긴 건물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건물 앞의 월대 역시 확장되어 장대한 규모가 되었다. 상하 이중으로 구성되었으며 바닥에는 전면에 박석이 치밀하게 깔려 종묘 정전의 엄숙한 건축 구성과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오늘 우리의 생활공간은 전통의 미적 감각과 현대의 미적 감각이 공존하고 있다. 즉 오랜 시간 이 땅에 살며 우리가 가졌던 정신적 삶(문화)과 현재를 살아가는 물질적 삶(문명)이 공존하는 생활공간이다. 20세기에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이 있었고, 어렵게 맞은 해방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남북의 전쟁과 분단으로 온 땅이 폐허가 되어 지독한 가난에 놓였다. 이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매진했다. 그 결과 지금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이 됐다. 아쉽게도 물질적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정신적 삶은 가난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행사가 잠시 잊고 지내왔던 우리의 문화를 돌이켜 보고 정신적 삶과 물질적 삶이 균형을 맞춘 풍요로운 삶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규혁 건축가·한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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