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이 외부에 인사 문제 노출하다니… 안보 위기”
본지가 14일 접촉한 전·현직 국가정보원 간부와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반년 가까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국정원 상황에 입을 모아 우려를 쏟아냈다. 올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김규현 원장을 재신임했는데도 지금까지 조직 내부가 술렁이고 외부까지 파열음이 흘러나오는 건 ‘안보 위기’에 준하는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최고 첩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모사드조차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정보기관의 경각심이 요구되는 시기라며 인사 개혁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 보안이 중시돼야 할 정보기관의 인사 파동이 언론에 생중계되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가 가장 컸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1급 간부 인사가 닷새 만에 번복되는 초유 사태를 겪고도 여전히 내부 불만이 끊이지 않으면서 ‘파벌 싸움’ 양상으로 비화했고, 일부 언론 보도에선 대외비인 간부 이름과 직책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세계 어떤 정보기관이 인사 문제를 외부에 흘리냐”며 “정보기관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이 몰라야 제대로 일하는 것인데 한심하다”고 했다. 국정원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 원장은 “외부에 문제를 제기하니까 잡음이 흘러나오는 건데 그것만으로 보안 누설”이라며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조직을 추슬러 재정비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국정원 1차장 출신인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모사드 ‘정보 실패’를 교훈 삼아 기본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할 시점에 조직 관리로 잡음이 나온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핵 대응,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 경제 안보 문제까지 정보가 서포트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사받고 처벌받고 연금까지 깎이며 만신창이가 됐다. 마음잡고 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되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간부는 “지명도가 높고 존경받으며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새 원장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사기가 저하돼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대공 수사권 회복과 개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성욱 원장은 “외부 청탁을 원천 차단할 공정한 인사 시스템, 직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업무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보 업무 본연의 특성상 계량화가 어렵고 주관적 평가를 하게 될 소지가 있지만 지금 상황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사 파동 원흉으로 지목받는 ‘계급 정년’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직에 있을 때 국가 기밀을 다루는 국정원 직원은 다른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달리 퇴임 후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정보 소식통은 “계급 정년이 걸려 있어 승진을 못 하면 나가야 하는데 외부 활동 시 기밀·보안 누설로 처벌받을 소지가 크다”며 “이런 이유로 인사 때마다 승진에 목을 매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서바이벌 게임’ 같은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조기 퇴직 후 생활고에 시달려 택배 기사 등을 전전하는 전직 ‘정보맨’도 상당수라고 한다.
차제에 우리 정치권이 국정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하고 그 역할에 대해 폭넓은 합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남 교수는 “정보 업무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라며 “전문화·정예화·과학화된 정보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외교 소식통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같은 해외 유수 정보기관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한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국정원 내부의 분파적 정치 세력을 엄단하고,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 한국은 어느 때보다 불안한 안보 환경에 직면해 있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국정원발 불행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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