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일본인의 ‘닭한마리’ 사랑
얼마 전 도쿄의 한 야키토리 집 메뉴판에서 ‘닭한마리’를 발견했다. 그곳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아니었다. 야키토리 집은 야키토리 외에도 식사류나 술안주를 파는 곳이 있는데, 한식인 닭한마리가 있다니 의외였다. 직원은 닭한마리가 인기 메뉴라고 알려줬다. 한국인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닭한마리는 일본 현지에서 크게 사랑받는 한식이다.
나는 한국 유학 시절에 일본인 친구들과 이대 앞에 있는 닭한마리 맛집에 자주 갔다.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에도 가곤 했다. 어떤 한국인 친구는 “일본인은 왜 닭한마리를 좋아할까?”라며 신기해했다. 심지어 닭한마리를 먹어보지도 않은(아니, 그 이름조차 모르는) 한국인도 있었다.
닭한마리의 시작은 1970년대 후반 동대문이었다고 한다. 시장에 있던 닭칼국수 집이 손님 요청에 따라 팔게 된 요리가 닭한마리다. 원래 일부만 먹는 ‘로컬 푸드’였지만, 동대문 시장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 소문이 났다. 이제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은 일본인에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닭한마리는 일본인 입맛에 잘 맞는다. 일본에도 닭고기를 전골로 끓인 ‘미즈타키(水炊き)’라는 요리가 있다. 크게 보면 닭한마리와 비슷하지만, 미즈타키는 닭고기가 잘린 상태로 나온다. 말 그대로 닭 한 마리가 통째로 호쾌하게 나오는 요리는 일본에 없기 때문에, 닭한마리를 처음 보는 일본인은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는 것이다. 순한 국물 맛은 미즈타키와 가깝지만, 먹는 법이나 생김새가 달라서 신선해 보인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일본인이 많은데, 닭한마리는 다진 양념을 취향에 맞게 넣어 덜 맵게 할 수 있으니 먹기 편한 한식이다.
동대문 닭한마리 맛집들은 관광객 덕분에 장사가 잘되고 있고, 일본에 진출한 가게까지 나왔다. 일본 각지에는 닭한마리 전문점이 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10년 전 내가 서울에 살 때부터 일본인의 인기 메뉴였는데,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는 걸 보면 반짝 유행은 아닌 것 같다. 치즈닭갈비나 전구소다 같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음식뿐 아니라, 로컬 한식이 일본에 자리 잡은 건 한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 한국인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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