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49] 위대한 실패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은 극지방 탐험을 두고 노르웨이와 경쟁했다. 첫 목표는 북극점이었다. 그런데 둘 다 허탕 쳤다. 1909년 4월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자 영국과 노르웨이는 남극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1911년 10월 두 나라 탐험대가 엇비슷하게 남극 대륙에 도착했다. 장비는 완전히 달랐다. 로버트 스콧 해군 대령이 이끄는 영국 팀은 가벼운 모직 방한복을 준비하고 힘센 말이 썰매를 끌도록 했다. 반면 노르웨이의 아문센 팀은 묵직한 가죽 방한복을 입고, 땀을 흘리지 않는 개가 썰매를 끌도록 했다.
결과는 아문센의 승리였다. 1911년 12월 14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국기를 꽂았다. 한 달 뒤 같은 장소에 도착한 영국 스콧 팀은 아문센 팀이 남겨 놓은 깃발과 텐트를 발견하고 좌절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철수하다가 전원 얼어 죽었다.
스콧 팀의 비극적 최후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경험이 아니라 장비를 믿었다. 영국 탐험대는 1909년 이미 남극점 100마일 부근까지 접근했었다. 그때도 말을 동원했지만, 남극에서 말은 비효율적이었다. 스콧은 전임자의 그 실패담을 무시했다. 둘째,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었다. 1909년의 실패는 탐험선이 얼음에 갇혔기 때문이다. 일정 지연으로 식량이 떨어지자 당시 탐험 대장 어니스트 섀클턴은 목표를 코앞에 두고도 후퇴를 결정했다. 불가능해진 목표 대신 무사 귀환을 택한 것이다. 후퇴를 불명예로 여겼던 스콧은 앞만 보고 달렸고, 자기가 뒤진 것을 깨닫자 무너졌다.
스콧이나, 섀클턴이나 실패자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섀클턴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팀원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린 섀클턴의 포기는 ‘위대한 실패’라고 칭송받는다. 상황이 바뀌면 목표도 바뀌어야 한다. 그게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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