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통역사의 앞날

강필희 기자 2023. 1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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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부산비엔날레 당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오사카 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에 관한 일본인 전문가의 강연이 열렸다.

통역사의 통역 분량은 실제 발언의 절반도 안 됐고 그마저 맥락이 없었다.

동시통역사 역할을 사람이 아닌 AI가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AI 통역사가 생기면 더 이상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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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부산비엔날레 당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오사카 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에 관한 일본인 전문가의 강연이 열렸다. 하지만 1시간 가까운 발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통역사의 통역 분량은 실제 발언의 절반도 안 됐고 그마저 맥락이 없었다. 강연자가 의도한 유머 포인트를 모두 놓치는 바람에 객석에선 극소수만 웃음을 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통역의 힘을 제대로 느낀 건 같은 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였다.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전문 통역인이 아닌데도 의도와 뉘앙스까지 전하며 청중을 몰입시켰다. 끝난 뒤 다들 통역자 정체를 궁금해할 정도였다.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엔 공통된 의미 구조가 있다. ‘엄마’와 ‘마더(mother)’는 다르지만 두 단어가 가리키는 심상은 같다. 동일한 알맹이를 외피만 바꿔 전달하는 고도의 능력이 통역이다. 한쪽 말을 들은 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순차통역도 어렵지만, 이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동시통역은 난이도가 가장 높다. 아무리 양쪽 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해도 순식간에 스위치를 바꾸는 덴 완전히 다른 뇌 기제가 동원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실시간 통역 서비스 기능을 탑재할 계획이다. ‘AI 라이브 통역 콜’이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통화 중 자국어로 이야기 하면 기기 내 AI가 상대어로 바꿔 말한다. 한국어가 저쪽엔 영어로 전달되고 상대방 영어는 한국어로 들리는 식이다. 동시통역사 역할을 사람이 아닌 AI가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탑재 대상 기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르면 내년 1월 공개될 갤럭시 S24 시리즈가 유력하다. 실행되면 세계 최초라고 한다. AI 동시통역이 휴대전화를 넘어 국제회의장에 등장할 날도 머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쉬운데 컴퓨터에겐 어렵거나, 컴퓨터에겐 쉬운데 사람에게 어려운 게 있다. 개와 고양이 구분은 전자, 고차원 계산은 후자에 해당한다. ‘모라벡의 역설’이다. AI 시대 사라질 위험이 높은 직업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조립 합성 계산 같은 정량적 기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AI 통역사가 생기면 더 이상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까. 단순한 구절 대 구절 수준의 통역은 속도나 정확성에서 AI가 나을 수 있다. 인간 통역사의 앞날은 그런 기계와의 차별성에 있을 것이다. “놀고 있네” 혹은 “너 참 잘 났다”라는 말을 AI가 적확하게 번역할 수 있다면 긴장은 그때부터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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