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뉴욕을 걷다
뉴욕이 궁금했다. 문화 예술의 도시, 다양한 인종이 만나는 도시, 그래서 각 나라의 생활방식과 음식들이 있고 이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도시, 뉴욕을 보고 싶었다.
“엄마! 퇴직 기념으로 뉴욕 여행할래?” 얼씨구. 퇴직을 전후로 긴 연휴가 생겼다.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 임시 공휴일까지. 직장인인 딸도 며칠만 휴가를 내면 뉴욕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타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퇴직 짐 정리를 하는데 30여 년 묵은 자료가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오랫동안 남편 혼자 지내야 하니 청소며 음식 준비 등 종종걸음을 치느라 정작 여행 준비는 할 수가 없었다.
옷가지만 몇 벌 챙겨서 정신없이 비행기를 탔다. 계획형 인간이라 무슨 일이든 사전 준비가 완벽해야 안심하는 편인데 여행 준비를 하나도 못했으니 기내에서 벼락치기 뉴욕 공부를 했다.
와~ 뉴욕이다. 진짜 뉴욕에 왔다. JFK 공항에 도착하니 토요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도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14시간을 날아와도 같은 날 오전이라니. 시차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신기하다.
뉴욕은 비가 오고 쌀쌀했다. 예약해둔 한인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맨해튼 남쪽으로 가는데 맨해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1697년에 지어진 트리니티 교회를 비롯해 오래된 건물도 많고 관공서, 금융기관 등이 몰려있다. 뉴욕증권거래소, 뉴욕 연방준비은행 등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기관이 밀집해 있는 월스트리트가 뉴욕 최남쪽에 있구나. 먼저 숙소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뾰족한 건물이 보인다. 미국 마천루 역사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뉴스에서 많이 보던 황소도 눈길을 끈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역동적인데 웃는 상이다.
다음날 교통카드부터 구매했다. 뉴욕은 지하철과 버스로 잘 연결돼 대중교통으로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다. 지하철 노선이 많아 복잡해 보이지만 출입구와 방향만 잘 확인하면 365일 24시간 운행되니 편리하다. 그런데 1904년 개통한 지하철이다 보니 낡고 더럽고 스크린 도어가 없어 위험하기도 하다. 종종 사고도 있어서 우리는 지하철 타기 전까지 선로에서 멀리 떨어져 벽에 딱 붙어있거나, 계단에 서 있다가 시간이 됐을 때 타러 내려갔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센트럴파크. 넓은 잔디밭에 누워 뉴욕의 하늘을 바라보리라 기대하며 여행 가방에 돗자리까지 챙겼는데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서 있는 요란한 장식의 마차가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조금 걸어 들어가니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도 돗자리를 폈다.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넓은 잔디밭과 꽃, 나무와 새들, 오랜만에 맑은 날이라 뉴욕의 하늘이 더 높고 파랗다.
고대 이집트부터 근대 회화 작품까지 약 300만 점의 작품이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책에서나 봤던 그림들을 실물로 보니 감동이다. 또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레픽아나돌이 AI를 활용해서 만든 대형 미디어 아트,언수퍼바이즈드 앞에서는 넋을 놓고 보다가 동영상으로 담았다. 뉴욕의 쥐를 보고 기겁하고, 거리의 대마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걷기도 했지만, 또 높은 물가와 높은 환율로 등골이 휘기도 했지만, 브로드웨이의 라이언 킹 기린과 피터루거 할아버지 웨이터의 미소, 정신을 쏙 빼놓았던 타임스 스퀘어의 전광판과 눈물 같았던 9·11 추모공원의 흐르는 물도 가슴에 담아왔다. 오늘도 난 첼시마켓 서점에서 산 뉴욕의 사진 책을 넘기며 여행을 추억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날씨지만 민소매부터 밍크코트까지 입어도, 복잡한 기차역에서 웨딩사진을 찍어도, 이상하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고 배려하고 친절하게 받아주는 사람들. 정말 뉴욕은 다양한 인종의 다양하게 사는 모습으로 재미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으로 인해 예술 패션 상업 금융 미디어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세계의 문화수도가 된 것 같다. 퇴직 후의 첫 여행! 뉴욕은 뉴요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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