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인플레보다 디플레가 더 무서워 금리 안 올려”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3. 1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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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재일교포 출신 日경제 전문가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탈출에 10년이나 걸렸습니다. 반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금방 대응할 수 있다고 일본 통화 당국은 생각합니다. 당국이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엔·달러 환율이 다시 하락(엔화 가치는 상승)해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봅니다.”

이지평(60)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미국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고 일본 엔화 가치를 떠받치는 실물 경제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에 엔·달러 환율은 내년에는 조금 하락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재일 교포 출신으로 일본 호세이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LG경제연구원과 한국외대에서 35년째 일본 경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일본 경제 전문가인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엔·달러 환율이 다시 하락한다고 해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기훈 기자

―미국 달러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1990년 이후 최저에 근접한 까닭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장 큰 요인이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일본은행은 단기정책금리를 –0.1%로 유지하고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0%에서 연 1%로 소폭 오르는 것을 용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려야 하는데도 소폭 올리는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달러 강세, 즉 엔화 약세(엔·달러 환율은 상승)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를 들어 2021년에는 금리가 –0.1%,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2%였다.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빼면 실질 금리는 플러스 0.1%였다. 지금은 금리가 –0.1%인데, 물가 상승률은 3%이다. 실질 금리가 –3.1%이다. 2021년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시기에는 실질 금리가 플러스여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이득이 됐다. 하지만 지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대가 되면서 돈을 갖고 있으면 시간이 갈수록 원금이 줄어드는 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됐다. 실질 금리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행은 2021년보다 지금 더 강력한 금융 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니 너도 나도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조금 오르는 걸 용인했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 변수를 상쇄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엔화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일본은행은 왜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지 않나?

“디플레이션 공포 때문이다. 일본은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금융 초완화 정책을 동원해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후임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근로자 임금 인상과 해외 일본 기업의 리쇼어링(귀환) 정책을 통해 내수 진작에 나서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3년간 물가 상승률이 플러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디플레이션은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가 다시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질까 봐 걱정이 많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는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심해지면 6개월이나 1년 내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정책 당국의 입장 때문에 올 들어 급격한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엔저 현상이 지속되려면 실물 경제가 좋지 않아야 하는데.

“1분기 GDP(국내총생산)가 전 분기 대비 연율로 3.2% 성장했다. 2분기는 4.8%였다. 올해 전체적으로는 1.5~2%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1%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 없이 완전 고용을 달성할 경우 나타나는 잠재성장률이 0.5%라고 보면 지금 일본 경제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코로나 사태 완화 이후 일본의 내수 소비가 늘고 해외에서 여행객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엔저로 기업 수익이 개선되고 있고, 인플레이션 시대가 되면서 기업들이 현금 유보보다는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투자 확대는 고용 확대, 임금 상승, 소비 확대로 선순환되고 있다. 지방 경제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경상수지도 흑자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상품 수출은 아직 적자이지만, 기업의 수익성은 나아지고 있다. 경기 회복세는 지속될 것 같다.”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가 올라감에 따라 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을 시도하고 있으나 그 정도가 미약해 시장에서 엔화 약세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31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교도통신 연합뉴스

―내년 엔화 가치는 어떻게 움직일까?

“일본은행은 내년초 단기 정책 금리를 -0.1%에서 플러스로 바꾸거나 장기 금리의 유도 목표치를 현행 1.0%에서 조금 더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혹은 장기 금리 통제는 사실상 무리한 정책이므로 내년 중에 없앨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가 더 이상 오르기 어렵고, 일본의 실물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보면, 내년에는 일본의 금리가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현재 달러당 150엔 정도가 한계선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엔·달러 환율이 급락할 것 같지는 않고, 대략 130~140엔 선까지 서서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에 2%대로 떨어지면 실질 금리도 지금보다 마이너스 폭이 줄어들면서 엔화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투자자들이 대거 일본 주식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는데.

“내년에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그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대신 기업별로 잘 살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강하므로 최근 기술 개발이 활발한 반도체 장비 업체나, 일본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그린 혁신, 디지털 혁신 분야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 차세대 자동차, 수소, 태양광발전은 일본이 아직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가진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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