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2조인데 매출 5900만원… ‘유니콘’ 뻥튀기 상장했나
조(兆) 단위 시가총액으로 상장하며 국내 투자 업계의 기대를 받던 반도체 업체 파두가, 지난 6개월(4~9월)간 4억원도 안 되는 매출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반도체 투자 업계가 충격에 빠졌고, 금융 당국은 이와 관련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8월 상장 당시엔 ‘올해 매출 1200억원’을 자신했던 회사가 3개월 만에 부진한 민낯을 드러내자 투자 업계에선 “무리한 상장이 아니었나”라는 말까지 나온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파두가 상장 과정에서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두는 지난 8월 7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다. 상장일 시총은 약 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빅테크 등에 반도체를 납품한다는 소식 등이 호재로 작용해 올해 국내 최초로 조 단위 상장을 이뤄냈다. 이후 시총은 한때 2조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연간 매출 예상치, 3분기까지 15%만 달성
그런데 회사가 내놓은 장밋빛 전망과 실제 실적은 딴판이었다. 파두가 상장 직전인 7월 공시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1203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 8일 발표된 회사의 3분기 누적(1~9월) 매출액은 180억원이다. 아직 4분기 실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7분 능선을 넘은 상황에서 매출 예상치를 15%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1분기(1~3월)보다 2·3분기의 실적이 더 안 좋았다. 1분기 매출은 177억원이었는데, 2분기는 0.3% 수준인 59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시가총액 2조원을 넘는 회사의 3개월 매출이 1억원도 안 된 것이다. 3분기 매출도 3억2000만원에 그쳤다. 이는 작년 3분기 매출액(136억원)에 비하면 약 98%나 감소한 것이다. 금융 당국은 파두의 상장 절차가 진행 중이던 7~8월 무렵, 회사가 최악의 2~3분기 실적을 알거나 예상했음에도 공시하지 않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빅테크 데이터센터 투자 미루자 타격
충격적인 실적 발표는 주식시장 유망주였던 파두의 주가를 단숨에 고꾸라뜨렸다. 실적 발표일이었던 지난 8일 3만4700원이었던 파두 주가는, 이튿날 30% 떨어져 하한가(2만4300원)로 추락했다. 다음 날인 10일에도 20% 넘게 하락해 1만원대가 됐다. 주말을 지나 13일에 소폭(0.4%) 올랐지만, 14일엔 다시 7% 하락한 1만7710원으로 마감했다. 상장 이후 최저치다.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선 “회사의 전망을 믿고 투자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창업한 파두는 데이터센터 전용 ‘SSD(Solid State Drive·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를 주력으로 개발하는 회사다. SSD는 메모리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저장장치로, 데이터 저장·처리량이 많아질수록 안정적인 컨트롤러가 중요해진다. 파두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메타를 비롯한 복수의 빅테크에 제품을 납품해 매출을 올렸다. 팹리스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소식에 파두는 상장 전부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으로 대접받았다.
파두의 실적이 급전직하한 것은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 IT 업계의 분석이다. 수조원의 투자금이 드는 데이터센터는 국내에선 IT 대기업, 해외에서도 빅테크들이 투자를 주도하는 산업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화되자 기업들은 출혈이 큰 데이터센터 투자를 미뤘고 이 타격은 자연스럽게 파두로 흘러갔다.
◇파두 “4분기부터 매출 회복”
파두 측은 지난 13일 입장문을 내고 “예상을 뛰어넘은 SSD 시장의 침체와 데이터센터 내부 상황이 맞물려 SSD 업체들 대부분이 큰 타격을 입었고 당사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상장 당시에는 실적 부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파두 상장을 대표로 주관했던 NH투자증권 측도 “매출에 직결되는 빅테크 들의 발주가 미뤄질 것이라고 (상장) 당시에 예상하긴 어려웠다”고 했다. 다만 파두 측은 4분기부터는 소폭이나마 매출이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반도체 설계 서비스(디자인하우스) 등 상장을 목표로 달려온 다른 스타트업들도 파두의 추락에 긴장하는 모양새다. 최근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과 AI·시스템 반도체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기업들에 수백억원대 투자가 지난 2~3년 사이 집중됐다.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생산 설비가 없는 팹리스는 담보 잡을 설비도 없고 대출도 어려워 벤처 투자와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확보가 생명”이라며 “대표 팹리스 상장사였던 파두가 논란에 휩싸이며 다른 팹리스 스타트업마저 투자 유치와 상장이 어려워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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