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벽화마을인가, 낙서마을인가/관리 못할 거면 모두 지워라

경기일보 2023. 11.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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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의 시초는 2008년이다. 부산 남구 문현동 산 23-1 일대였다.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에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이 찾았다. 점차 일반 관광객까지 몰렸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국에 벽화마을 조성 붐이 일었다. 이 마을의 그 후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10년을 못 가 무너졌다. 낙후 지역이었던 마을이 재개발로 결정되면서다.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기억 너머 마을이다.

멀쩡한 아파트 벽면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낙후됐거나 오래된 주택가가 캔버스다. 자연스레 재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지역들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없어질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버려진 골목에 그림 한 번 그리는 성격이 강했다. 지자체로서는 그만큼 접근하기 좋은 사업이었다. 그래서 많은 벽화 마을이 생겼다. 너도나도 예산 들여 만들고 홍보했다. 그렇게 등장했던 벽화마을은 다 어떻게 됐을까. 본보가 몇 곳 봤다.

안양시 만안구 양화로 일대 마을이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형체도 없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 흉물스럽다. 녹물이 흘러내려 그림을 덮어 버렸다. 수원특례시 행궁동에도 벽화마을이 있다.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림 일부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갔다. 떨어진 페인트 조각들이 골목에 널려 있다. 행궁동은 전국에 소문난 명소다. 관리 안 된 벽화로 그 명성이 흠집 나고 있다.

지자체에 관리 문제를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이랬다. ‘벽화가 조성된 지 10년 전이라 그 당시 자료도 찾기 힘들고, 현재 담당자도 없다. 도시재생을 위한 일회성 사업이었기 때문에 관리 예산을 배정했던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

불과 10년 전에 이뤄진 행정이다. 자료가 없어질 세월이 아니다. 담당자 바뀐다고 행정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재생은 지역을 살리는 복합 개발 행정이다. 요소 하나하나가 지속·포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개인이 조성한 벽화마을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도시 미관을 지도·관리하는 것도 행정의 영역이다. 지도하고, 관리했어야 맞다. 그랬다면 저렇게까지 버려졌을 리 없다. 벽화마을이 아니라 차라리 낙서마을에 가깝잖나.

애초부터 잘못된 행정이긴 하다. 그렇다고 과거만 타박할 순 없다. 현재 행정이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 벽화마을의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없앨 벽화는 모두 정리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정리 대상일 것이다. 차제에 벽화마을 조성에 대한 절차를 정식화할 필요도 있다. 벽화마을 조성에 앞서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의 방법이다. 전문가와 시민, 동네 주민도 참여하면 더 좋다. 큰 예산이나 많은 인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나.

어떻게든 손대야 한다. 저 흉한 벽을 두고 볼 순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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