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유전자 잘라내 난치병 치료, 美 허가 초읽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 치료제가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전자 치료제 허가가 나면 지금까지 정복하지 못한 질병들의 새로운 해결책이 될 전망이다.
FDA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열고 유전자 편집 치료제 ‘엑사셀’ 사용 승인에 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자문위원들은 안전성에 일부 우려를 표했지만 결론적으로 “치료제 승인에 따른 이점이 위험보다 크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FDA는 자문위 의견을 토대로 다음 달 8일까지 엑사셀의 첫째 치료 목표인 ‘겸상 적혈구 빈혈증 치료제’ 승인 결정을 내린 뒤 내년 3월 30일까지 둘째 치료 목표인 ‘베타 지중해 빈혈’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 버팔로대 제이컵스 의대 길 울프 교수는 CNN에 “치료제 안전성의 완벽을 기하는 일이 환자를 살리기를 막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지금까지 충족되지 않은 엄청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희소 질환 치료 해결사
엑사셀은 미국 버텍스 파머슈티컬스와 스위스 크리스퍼 세러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겸상 적혈구 빈혈증 치료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11번 염색체의 염기 이상으로 적혈구 모양이 낫 모양으로 변하는 질환이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낫 모양으로 뭉쳐지며 겸상 적혈구를 만드는데, 이렇게 변한 적혈구는 혈관을 막거나 산소 전달 능력을 낮춘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만 있을 뿐 근본적 치료제는 없다.
엑사셀은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채취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적혈구에서 ‘태아형 헤모글로빈(HbF)’을 생성하도록 유도한다. HbF는 유아일 때만 생성되는 헤모글로빈으로 산소 전달 능력이 크다. 버텍스 관계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발달 과정을 다시 활성화해 질병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했다.
버텍스와 크리스퍼 세러퓨틱스는 임상 시험을 통해 겸상 적혈구 빈혈 환자 31명이 엑사셀 치료 후 최장 32.3개월까지 혈관 폐쇄 위기를 겪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적응증인 베타 지중해 빈혈 환자 임상에서도 44명이 투약 후 36.2개월 동안 수혈받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단 한 번 투약으로 3년 이상 약효가 유지돼 완치에 가까운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치료제 ‘안전성’이 관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단점은 DNA의 엉뚱한 부분을 자를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적에서 벗어난 부분을 자른 뒤 이 부분을 복구하면 돌연변이가 발생해 암 등이 발병할 수 있다. FDA 자문위에서도 이런 ‘표적 외 편집’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표적 외 편집’ 위험은 실험에서도 일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버텍스와 크리스퍼 세러퓨틱스는 표적 외 편집을 유발하는 엑사셀의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해 카스9 효소가 실수로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표적이 되는 부위를 찾아가는 ‘가이드RNA’와 DNA를 절단하는 ‘카스9′ 효소로 이뤄져 있는데, 가이드RNA가 표적이 아닌 다른 부위로 안내해 카스9 효소가 작용하면 멀쩡한 DNA 부위를 잘라 편집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까지는 표적 외 편집이 일어나도 암 발생 등으로 이어진 사례가 드문 것으로 나타났지만, FDA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 유전적 다양성을 가진 아프리카 혈통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험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처는 “엑사셀은 4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지만 위험성을 평가하기에는 그 수가 적다”고 했다.
엑사셀 값은 최고가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엑사셀 치료 비용은 400만달러(약 52억5000만원)에서 600만달러 사이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종전 최고가 치료제인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의 치료비 350만달러를 훌쩍 넘는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치료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가 있는 DNA를 잘라 교정하는 치료제.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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