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 칼럼] 농구인 2세의 빛과 그림자, 공정성과 인프라
지난 14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용산중과 단대부중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점수 차가 벌어진 4쿼터 후반에 용산중은 벤치에 있던 선수들을 다수 기용했고, 4명의 선수가 농구인 2세였습니다.
3번 이승민은 전 DB 이효상 코치 아들, 이도윤은 안양 정관장 이종현 선수의 동생으로 부친은 기아자동차에서 뛰었던 이준호씨입니다. 11번 이승민은 이규섭 해설위원, 박준수는 박훈근 부산중앙코 코치의 아들입니다. 전재현은 전형수 명지고 코치의 아들입니다.
유전자의 힘, 특별함과 특혜
대회에 출전한 용산중 선수 중에 5명은 아버지가 농구인입니다. 용산중만이 아닙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KBL에서도 농구인 2세의 이름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연세대에는 전직 KBL, WKBL 감독 3명의 아들이 뛰고 있습니다.
허동택 트리오, 김승기 고양 소노 감독, 이훈재 국가대표팀 코치, 주희정 고려대 감독 등 많은 농구인의 자녀들이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NBA 진출을 준비하는 이현중과 여준석, 일본에서 뛰는 양재민 역시 농구인 2세입니다.
농구는 타고난 신체 조건이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농구인 자녀는 선천적으로 키와 운동능력이라는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 유리할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이현중과 여준석,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NBA에 진출했던 하승진, WNBA에 진출했던 박지수가 그런 사례입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대표팀 선발 특혜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농구팬의 관심도 적은 청소년대표 선발은 특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2010년에는 18세 대표팀 감독이 선수 특혜 선발 건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했습니다. 대표팀 선발 외에도 경기 출전 시간, 대회가 끝난 후 수상자 선정, 대학 진학, 드래프트 등 여러 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객관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준의 투명한 공개는 필수입니다. 객관적 기준의 투명한 공개 없이 의혹의 시선은 막을 수 없습니다. 선수 또한 평생 벗을 수 없는 멍에를 쓸 수 있습니다.
19개와 3000개, 핵심은 인프라
농구인 2세가 많아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한국농구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40개가 넘었던 남자 고등학교 농구부가 30개로 줄었습니다. 8월, 주말리그 왕중왕전에 참가했던 26개 팀 중 11개 팀은 엔트리 12명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여고부는 더 심각합니다. 참가한 10개 팀 중 엔트리를 모두 채운 팀이 하나도 없습니다. 4개 팀은 불과 6명의 선수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여고부에서 부상이나 5반칙 등의 이유로 경기에 4명이 뛰는 것은 이제 뉴스도 되지 않습니다.
피지컬, 멘탈, 스킬은 모든 운동선수에게 필수 요소입니다. 농구를 했던 부모는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여준석의 부친 여경익씨는 “농구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간다”고 했습니다.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아들은,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농구인 2세는 대한민국 농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산을 키우기 위해 공정성은 필요조건입니다. 공정성이 의심 받으면 소중한 자산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충분조건은 농구판의 파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파이를 키울수록 의혹이 설 자리는 줄어듭니다.
2023 KBO 한국시리즈 MVP 오지환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특혜 논란이 있었던 선수입니다. 기록은 말 그대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선발되기에 부족한 것은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팬들의 기준은 엄격했습니다.
지상파 3사 저녁 뉴스를 통해 운동선수의 병역 혜택과 관련한 이슈가 다뤄졌고, '오지환법'이라는 병역법 개정안까지 등장했습니다. 야구가 국민 스포츠라 가능했습니다. 보는 눈이 많을수록 공정성은 커집니다.
'2023~2024 여자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국제경쟁력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청주 KB스타즈 김완수 감독은 중·고등학교 게임을 보러 다니면 “5명을 겨우 채우거나 선수가 부족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팀이 많다”며 “인프라가 부족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도자도 반성해야 하지만 재료가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게 있"다는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 위성우 감독은 ”우리나라 여자농구 고등학교 팀이 19개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3000개가 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선수가 적어지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물론 국제경쟁력 약화입니다.
어제 용산중을 상대한 단대부중의 엔트리는 7명입니다. 다음 경기에 나온 휘문고의 엔트리는 6명이었습니다. 3학년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적습니다. 핵심은 인프라입니다.
#조원규_칼럼니스트 chowk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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