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무감각 없나” 호통에...산업부, 전기료 상승폭 확 낮췄다
“국가 안위에 위협” 경고 묵살
40% 오를 전기료, 11%로 축소
문재인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 없이 신재생에너지 발전(發電) 비중을 확대하면 국가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경고를 묵살하고 신재생 발전 비중 확대를 밀어붙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이 14일 공개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수립한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통해, 2029년까지 전기 생산에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의 비율을 11.7%로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신재생 발전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인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고, 산업부는 2017년 5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이 공약을 강행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산업부 경고의 핵심은, 신재생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수십조원 규모의 전기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재생 발전 설비에서 나오는 전기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송배전망이 확충돼야 한다. 또 태양광·풍력발전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발전량이 많을 때 남는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발전량이 적을 때 이를 꺼내 쓰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가 많이 필요하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전력 수급을 실시간으로 맞춰주지 않으면, 전체 전기 공급이 일시에 중단되는 대정전이 벌어질 수 있다. “국가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이란 이를 말한 것으로, 산업부는 대정전을 막기 위해선 송배전망 확충에 18조원, ESS 확보에 6조5000억원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기획위는 인프라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20%로 확대’를 국정 과제로 채택했고, 문 정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신재생 발전 확대 계획만을 담은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을 확정했다. 청와대는 산업부에 “탈원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는 문 전 대통령의 지시만을 하달했다. 인프라 투자 필요성은 무시됐다.
문 정부 청와대가 산업부에 ‘신재생 발전 비중을 높이더라도 2018년부터 2030년까지 12년 동안 전기 요금이 단 10.9%만 오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전망을 내놓게 한 사실도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산업부는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신재생 발전 비율을 20%로 높일 경우 전기 요금을 최대 39.6% 올려야 한다’고 보고했다. 국민들로부터 전기 요금을 140조원 이상 더 거둬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이런 보고를 접한 청와대는 산업부에 “정무적인 감각도 없느냐”며 “신재생 발전 단가가 ‘하락’한다고 가정해 분석해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신재생 발전 단가가 2030년까지 30~50% 하락하고, 당시 이례적인 저(低)유가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가정해, 전기 요금이 0.5~6.6%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만들어냈다. 이 숫자는 이후 10.9%로 바뀌었으나, 처음 계산한 39.6%에 비하면 약 4분의 1에 불과한 것이었다.
산업부가 내놓은 전망치에 대해 국회와 언론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전력도 신재생 발전 확대로 비용이 상승해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고 산업부에 보고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언론 보도에 반박하는 자료만 9차례 발표했다. 산업부와 한전은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에 ‘탈원전·신재생에너지 확대로 한전의 전력 구입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대목이 들어가자, 국회에 이 대목을 임의로 삭제한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신재생 발전 비율 목표치는 2015년 11.7%에서 2017년 20%로 상향된 데 이어 2021년 30.2%로 한번 더 높아졌다. 문 전 대통령이 2021년 11월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크게 높인다’고 발표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초 한국은 2030년까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18년 배출량 대비 26.3%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공표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이 목표치를 상향할 것을 지시했고, 산업부·환경부 등 정부 부처들이 협의를 시작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계획보다 더 줄이려면, 발전 분야에서는 화력 발전의 비중을 크게 낮춰야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의 전기 요금 부담을 높이지 않으려면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여야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탈원전을 기조를 삼고 있어 원전 확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신재생 발전 비중을 높이는 방안만이 논의됐다.
산업부가 계산해 보니, 2030년까지 높일 수 있는 신재생 발전 비율은 현실적으로는 24.2%, 이상적인 경우에도 26.4%가 한계였다. 이러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30%까지로는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부의 계산은 무시됐고, 대통령 보고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감축 목표치는 40%였다. 이에 맞춰,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율을 30.2%로 높인다는 목표치도 설정됐다. 이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 참석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리협정에 따라, 한번 높여놓은 목표치는 낮출 수 없다. 한국이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수 있는 불이익은 2030년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져야 한다.
문 정부는 신재생 발전 확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 발전 사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 보조금을 빼먹기 위한 온갖 비리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 등 태양광 인허가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 8곳 임직원 251명이 본인이나 가족·지인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하면서 보조금을 받다가 적발됐고, 공직자·민간인 815명은 농업인이 태양광 사업을 하면 보조금을 더 받는 제도를 악용하기 위해 ‘가짜 농업인’ 행세를 하다가 적발됐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38명을 수사 요청하고 7명을 징계·문책 요구하는 한편, 289명은 관련 기관에 추가 조사 후 고발 또는 징계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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