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홈런 동지 박동원·오지환이 ‘새바람’ 일으켰다
‘신바람 야구’ 후 겪은 KS 1차전 징크스
2차전 박동원·3차전 오지환 역전포에
28년 팀 짓눌러온 초조함·부담 해방
프로야구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3년. LG 선수들은 정규시즌 초반을 지나며 일명 ‘으쌰으쌰’ 세리머니를 했다. 야수 최고참으로 클럽하우스를 이끌던 이병규(현 삼성 수석코치)가 실패한 시즌이 거듭되며 위축돼 있던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려고 제안하고 시범도 보인 동작이었다.
매 시즌 달라진 LG의 불안 요소는 팀 전력 몇몇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수단에 잠재돼 있던 불안감이 또 하나의 불안 요소였다.
참 아이러니했다. LG는 1994년 우승 이후 ‘스타군단’을 꾸리며 신바람 야구로 전성기를 달렸다. 선수들의 자부심, 자신감 싸움에서는 어느 팀과 붙어도 뒤질 일이 없었다.
그러나 2002년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전후로 구단 수뇌부에서는 이른바 간판선수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의도와는 달리 팀이 ‘암흑기’로 빠져드는 시발점이 되고 만다.
‘신바람’이 사라진 자리에 ‘새바람’은 쉽게 불지 않았다. 2013년 이병규·박용택·봉중근 등 다시 완성형에 가까운 투타 진용을 갖추고 정규시즌 1위 다툼도 했지만, 내야 실책으로 1차전을 놓친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실패한 뒤로 한국시리즈에 도전하기까지는 10년 세월이 더 걸렸다.
LG는 지난 13일 한국시리즈 잠실 5차전에서 28년 묵은 한을 풀었다. 염경엽 LG 감독은 한국시리즈 대비 과정에서의 선수들 표정을 간절함으로 읽으려 했지만 간절함의 다른 표현은 부담이기도 했다. 염 감독은 특유의 준비와 분석으로 자신감을 충전하고 부담을 극복하려 했지만 이번 시리즈도 계획대로 시작해 뜻대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LG는 에이스 케이시 켈리를 선발로 올리고 흐름도 유리했던 1차전을 KT에 내준 뒤 2차전에서도 1회 4점을 허용하고 선발 최원태를 1사 뒤 강판해야 하는 벼랑에 몰리기도 했다. 염 감독은 5차전 이후 이때를 압박감이 극대화된 시점으로 꼽으며 “그 장면서 1~2점만 더 내줬어도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리즈 전체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초조함, 중압감 등 심리적 요인을 구호 몇개로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계산할 수 없는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야구에서는 그것이 ‘홈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승엽·마해영의 9회 연속 홈런으로
2002년 삼성 첫 우승 장면과 오버랩
긴 시간 곁 지켜준 LG팬 감동 눈물
LG의 오랜 부담 탈출은, LG에는 아쉬움의 역사인 2002년 한국시리즈의 삼성 우승 장면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했지만, 포스트시즌 마지막 무대에서는 매번 눈물을 흘렸다. 압도적인 전력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6차전 막판에 궁지에 몰려 있다가 9회 이승엽의 극적인 3점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압박의 세월에서 벗어났다.
LG는 이번 시리즈에서 2차전 8회 박동원의 벼락 같은 역전 투런홈런과 3차전 9회 오지환의 만화 같은 역전 스리런홈런으로 시리즈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둘 중 하나만 터지지 않았어도 한국시리즈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갈망했던 우승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눈물 젖은 얼굴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LG의 세월을 직접 겪은 차명석 단장과 베테랑 프런트 몇몇 그리고 투수 임찬규 등이 그라운드를 오가며 그렁그렁 눈시울을 붉혔다. 오히려 관중석 곳곳에서 오랜 LG팬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어쩌면 현재의 LG 구성원 대부분이 그 시절 그 느낌을 말로만 들었던 것이 이번 시리즈에서 ‘덤덤한 힘’을 끌어올리는 배경이 됐을지 모른다. 5차전 LG 선발 라인업에서 암흑기를 경험한 선수는 유격수 오지환뿐이었다.
안승호 선임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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