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장의 당당한 포부… “우승은 새 시작”

남정훈 2023. 11. 1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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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이끈 LG 염경엽 감독
LG 프런트·수비코치 등 거쳐
넥센·SK 돌고돌아 LG 지휘봉
맡은 팀 중 우승과 가장 가까워
감독 맡게돼 행운이라고 생각
바로 2024년 시즌 구상 나설 것

지난해 11월 LG의 14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염경엽(55) 감독. 그가 LG에 몸담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0년 현역 은퇴한 염 감독은 2001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프런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2008년부터 LG로 둥지를 옮겨 스카우트를 시작으로 2009년엔 운영팀장을 맡았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에 계속 실패하던 팀을 쇄신하기 위해 염 감독은 운영팀장으로서 프런트 인력을 대거 정리했지만, LG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팬들의 원성은 염 감독에 향했다. 그가 구단을 좌지우지하며 LG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결국 프런트 일을 내려놓고 LG 수비코치로 현장에 복귀한 염 감독은 2011시즌을 마치고 LG를 떠났다.
LG 염경엽 감독이 지난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를 6-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감독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스1
한때 팬들로부터 LG 암흑기의 ‘원흉’이라고 지목받았던 남자는 LG를 떠나 실력을 키워 다시 돌아왔고, 29년 만에 LG에게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딱 들어맞는 스토리다.

염 감독이 이끄는 LG는 지난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7전4승제) 5차전에서 KT를 6-2로 꺾으며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1994년에 이은 팀 역사상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인터뷰실에 들어선 염 감독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기쁨이 한데 섞여 있었다. 그는 “우리 LG 팬들이 정말 오랫동안 우승을 기다려주셨다.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선수단에 절실함이 만들어졌다. 정규시즌 동안 어려움을 딛고 우승을 하면서 성장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시리즈에 임한 결과가 우승으로 돌아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1년 LG를 떠난 염 감독은 시련을 겪으며 강해졌다. 2013년 넥센(현 키움) 사령탑에 부임해 201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염 감독은 “당시 전력은 삼성에게 떨어졌지만, 승운이 따랐다. 겁 없이 덤볐던 시절이었고,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쉬움이 컸다. 오늘 우승해서 운 것보다 당시 준우승 때 훨씬 많이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6년 넥센을 떠난 염 감독은 2017년부터 2년간 SK(현 SSG) 단장을 맡았고, 2019년부터 SK 사령탑을 맡았다. 2019시즌 내내 1위를 달리다 정규리그 막판 두산에게 1위를 내줬고, 2위로 맞이한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3전 전패로 패했다. 이듬해엔 SK의 성적 부진이 심해지자 극심한 스트레스로 두 차례나 쓰러졌고,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야인으로 돌아간 염 감독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연수 코치, KBO 아카데미 디렉터, 해설위원을 거치며 자신의 야구 철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염 감독은 “현장을 떠난 동안 감독 생활을 하면서 보냈던 시즌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공부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내가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떤 게 좋았는지 정리했다. 앞서 실패를 했던 것들이 자양분이 됐고 마지막까지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LG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염 감독은 “가족들은 LG 감독직을 맡는 것을 다 반대했지만, 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맡아본 팀 중 우승에 가장 가까운 팀이었기 때문”이라면서 “과거 LG에서 프런트와 수비코치를 맡던 시절 엄청 욕을 먹었다. 그때 당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대상자로 내가 지목됐다. 팀을 떠나겠다던 저를 당시 구본무 구단주님께서 잡았지만, 저는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 LG가 6-2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염경엽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먼 길을 돌고 돌아 ‘성공’해서 LG로 돌아온 ‘염갈량’은 훨씬 강해졌다. 시즌 초반 선발진이 무너졌을 때 타격과 불펜 힘으로 견뎌내며 선두권을 유지했고, 후반기엔 독주하며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시즌 막판 부상 복귀로 이견을 보이던 에이스 애덤 플럿코를 과감하게 내치고 한국시리즈 판을 짜는 승부사적인 기질도 돋보였다.

“조금만 쉬고 바로 내년 시즌 구상에 돌입하겠다”는 염 감독의 시선은 이제 내년으로 향한다. “올 시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만 우승하면 내년 시즌엔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선수단에 신구 조화가 잘 되어 있기에 1년에 어린 선수들 한둘씩만 키워낸다면 일회성 우승이 아닌 꾸준히 강한 명문구단이 될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뗐다. 이 우승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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