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보다 정확한 대체시험, 동물은 물론 인간 위해서도 늘려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동물보호 국제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의 한국지부에서 2015년부터 일하고 있다. 영국 셰필드대에서 동물행동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런던에서 동물의 권리 증진을 위한 비정부기구 활동을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의 처우 개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동물대체시험법 입법을 위해 현장에서 뛰고 있다. HSI가 2021년 동물복지국회포럼의 동물복지대상 정책·학술부문 특별상, 2022년 동물실험대체법학회의 사회기여 우수단체상을 수상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EU가 기술표준 선점하려
빠르게 움직이는 데 비해서
한국은 기술개발 상당한데도
상용화 더디고 되레 동물실험 늘어
동물실험이 본격화한 것은 19세기부터다. 독성물질이 인간과 동물에 미치는 영향이 같다는 이론이 수용되면서 쥐, 토끼, 개, 원숭이 등을 이용한 동물실험은 생리학 분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동물과 사람은 종이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실험의 정확도는 43.5~66.7% 수준이다. 1960년대까지 팔린 임부용 입덧방지제 ‘탈리도마이드’는 전 세계 1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의료계 최악의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동물실험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해외에선 동물실험에서 성공한 약물의 90%가 임상시험에서 실패했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최근 4년간 국내 제약사 임상시험에서도 예상치 못한 약물 이상반응이 1822명에게서 나타났고, 그중 165명이 사망한 걸로 당국은 집계하고 있다.
동물 대신 기술을 쓰자는 움직임도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동물시험대체법을 독성평가 규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2025년까지 점차 동물실험을 줄이고 2035년엔 포유류 동물실험을 완전히 퇴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유럽연합(EU)도 모든 의약품 제조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지난 8월 발표했다.
한국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을까. 동물대체시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온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의 서보라미 정책국장을 지난 7일 인천 송도에서 만났다. 서 국장은 “정확도가 높은 동물대체시험 기술은 동물복지뿐 아니라 인간의 복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EU가 기술표준을 선점하려 빠르게 움직이는데 한국은 기술 개발이 상당한데도 상용화가 더디고 되레 실험동물 수는 급격하게 늘어난 실정”이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대체시험법 제정법이 연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극심한 고통 유발 E등급 실험 비율
국내에선 절반 육박…EU의 5배
동물실험 인체 부작용 예측 어렵고
대체기술 있다면 불필요한 폭력
- 한국은 연간 실험동물 숫자가 2013년 197만마리에서 급증해 2022년 역대 최고치인 499만마리를 기록했습니다. 영국에선 실험동물보호지침이 도입된 2014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는 것과 대비됩니다.
“제약·바이오 부문이 성장하면서 국내에서 사용되는 실험동물 숫자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E등급’ 실험 비율이 48.5%에 달합니다. 마취하지 않은 동물을 고정시키고는 독성물질을 흡입하도록 강제하거나, 종양 등을 유발한 뒤 관찰하는 실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EU는 이 비율이 10% 내외로 현저히 낮습니다. 한국이 동물실험을 당연시하다 보니 고통을 줄이려는 별다른 노력 없이 관행이 지속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일각에선 동물실험이라도 해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상할 수 있어 ‘필요악’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실험을 하더라도 인체 부작용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동물실험에 성공하고도 임상시험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아요. 인위적으로 질병을 갖도록 조작된 실험쥐로 연구하더라도 사람과 다를뿐더러 호르몬을 비롯해 각종 스트레스에 따른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결과값이 정확하지 않다고 현장 연구자들은 한계를 지적합니다. 동물실험실 간 데이터 일치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검증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동물대체시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동물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복지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유명한 세계적 연구센터인 영국의 웰컴생어연구소는 동물실험실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2019년 발표한 바 있는데요.
“오가노이드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로 동물실험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결정입니다. 미국 FDA가 동물실험 결과 외에도 장기칩, 컴퓨터 모델링을 비롯한 동물대체시험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굳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도 사람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방향을 전환한 겁니다.”
대체기술이 충분히 가능하다면 동물의 고통을 유발하는 실험은 불필요한 폭력이 된다. 대표적 사례가 투구게다. 푸른색 혈액이 독소에 반응하는 특성 때문에 강제채혈을 당하는데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도 수십만마리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프랑스 은행그룹 BNP파리바는 지난 8월 글로벌 제약사들에 보낸 서한에서 “투구게 혈액 대신 ‘재조합 C인자’라는 대체물질을 사용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관성을 깨라는 것이다.
- EU는 2013년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로 시장을 선도한 바 있습니다. ‘이게 가능하냐’는 의구심을 뛰어넘었죠.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관련 조치가 시행 중인데, 사실 동물실험에서 화장품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약품, 치과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구를 비롯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많은 제품들이 동물실험을 거칩니다. 각종 ‘건강기능성 식품’도 효과성분을 인정받기 위해 동물실험을 하죠. 지난해 실험동물 숫자가 연간 500만마리에 가까웠던 이유입니다.”
- 인체에 기반한 장기칩, 오가노이드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동물실험의 수준에 준하는 신뢰를 얻고 업계의 표준을 이룰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정체기를 지나 올해 미 FDA 결정이 나오면서 패러다임이 확실히 바뀌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시험법이 국제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제 그 결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미국·EU가 관련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은 업계 표준을 정립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일 머크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장기칩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도 도전하는 중입니다. 10여년 사이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것처럼 동물대체시험 기술의 보편화도 극적인 전환기를 맞게 되겠죠. 연구소에 동물실험실을 당연한 듯 두는 관행은 아마도 재생에너지 시대의 석탄발전처럼 ‘모든 생명체를 위한 지구’라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는 낡은 것이 될 것입니다.”
- 동물대체시험법이 업계의 표준이 된다면 동물실험이 수출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생기겠군요. 마치 화학물질이나 탄소 배출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통상규제 장벽으로 등장한 것처럼요.
“실제로 최근 한 영국 업체는 화학물질의 피부·안구 자극에 관한 동물실험 결과를 한국 쪽에 제출해야 했는데, ‘대체시험법이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굳이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사안에서는 사실 진취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하기보다는 보수적으로 동물실험을 계속할 유인이 더 높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기존 동물실험실을 대체할 신규 장비를 도입하고 손에 익을 시간도 필요하다는 점은 아무래도 기존 관행을 지속하려는 관성으로 작용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내 연구 현장은 국제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농촌진흥청은 농약 등록 과정에서 사람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내분비계 장애물질인지를 대체시험법으로 평가하도록 하면서 연간 5700여마리의 실험쥐 사용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어요. 작년 4월 환경부는 동물대체시험법 확대 계획을 내놨고요. 지난달에는 식약처와 국내 기관이 개발한 대체시험법이 국제표준법으로 인정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국내 기술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국회 계류 중인 동물대체시험법안
연내에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 현재 국회에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과 같은 당 한정애 의원의 ‘동물대체시험 활성화법안’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대체시험법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주요 부처들이 ‘미래 핵심 기술’에 수백억원씩 투자하고는 있지만 전략적인 플랜이 부족한 이유죠. 법을 만들어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부처 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입니다. 미국·EU의 경우 정부 차원의 대규모 연구자금 지원 등을 통해 선두주자가 됐거든요.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동시에 실제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간극이 큰 편입니다.”
- 신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두려움은 대체시험법에 관해서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아요. 동물복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말이죠.
“정부와 산업계, 소비자가 함께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시험법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80% 선에 달합니다. 대체시험이 동물실험을 지금 당장 완벽하게 대신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불필요하고 지나친 고통을 주는 동물실험부터 줄여나가면서 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장기칩 시장,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데 한국서는 아직 상업화 초기
동물대체시험 기술·시장 전망
동물대체시험법이 미래 기술·개발(R&D)의 주류이자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의 신체에서 유래한 세포나 데이터를 이용해 동물실험보다 정확한 결과를 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포 기반 시험법’ 가운데 ‘시험관시험법’은 전통적인 방식이다. 배양 접시에 세포를 평면적으로 길러서 실험한다.
‘장기칩’(organ-on-a-chip)은 실제 생체환경을 모사한 칩에 세포를 배양하는 방식이다. 혈액이 흐르거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거나, 연동운동을 하는 장기의 특성을 미세한 기계적 요소를 활용해서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 한국인 공학도 출신인 허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는 이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2010년 하버드 비스연구소 재직 당시 세계 최초로 허파 장기칩을 개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다중장기칩’은 하나의 약물이 여러 장기에 동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개발한 칩은 간·폐·자궁내막·장·뇌·심장·신장·골격근 등 10가지 장기에 대해 동시에 실험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는 인체 줄기세포 등을 장기와 유사하게 3차원으로 배양하는 신기술이다. 특정 개인의 체세포를 토대로 맞춤형 약물을 만들 수 있고, 암세포 등을 배양해서 질환 모델로도 이용할 수 있다. 2016년 지카바이러스가 인간 태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2021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료제 후보를 발굴한 연구 등이 이 같은 오가노이드를 토대로 진행됐다. 관련 기술은 미국·유럽 등이 선도 중이고, 한국은 2~3년가량 기술격차로 뒤처진 상황이다.
동물이나 사람 세포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컴퓨터 모델링’도 있다. 빅데이터에 기반해 화학물질 구조의 위해성을 예측하거나, 세포·장기·개체 등의 생리적 기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늠하는 게 가능하다. 상당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결과를 예측할 수도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산업동향 보고서에서 장기칩 시장이 2029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2022년 글로벌 시장 규모는 8787만달러로, 미국 내 주요 기업들은 하버드대 등의 연구진이 개발한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제품화에 성공하며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국내 장기칩 시장은 68만달러 규모로 시장 형성 초기 단계로, 우수한 연구실적이 계속 발표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상업화는 초기 단계”라고 분석했다.
오가노이드의 경우 글로벌 시장 규모는 12억6000만달러로 북미·유럽 등의 시장점유율이 80%에 달하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이 역분화줄기세포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고속성장 중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도 초기 단계라고 한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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