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가정 임종의 행운을 더 많이 누리자면
사람의 출생과 사망은 반드시 신고해야만 하는 사건이다. 특히나 사망은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판단’이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의료적/법률적 사건’이다. 무슨 이유로 돌아가셨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 우리는 적어도 죽을 때는 의사를 만나야만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일할 때, 이미 돌아가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응급실로 들어오시는 이들이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참은 지났다는 거다. 어떤 경우는 병원에 남겨져 있었던 평소 의무기록을 참고하여 시체검안서를 받아 가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흉부촬영이나 두부CT 검사를 받기도 했다. 모두 병원에서 사망하지 못하여, 즉 의사의 사망선언을 받지 못해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쉽지 않아 무작정 응급실로 오는 경우들이었다.
방문진료를 다니다 보면,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얼마 전에는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임종을 지키고 싶다고 진료실을 찾아오신 분도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병원에 방문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가정으로 방문진료를 신청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하신 분들이다. 혹은 부모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평온한 죽음을 준비하려는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 귀한 마음만으로 집에서의 죽음이 편안히 이뤄지는 건 아니라서,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환자분이 의식과 인지가 괜찮으시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시도록 알려드린다. 이 의향서는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공식적으로 밝히는 서류다. 방문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위한 상담가 교육을 모두 이수, 환자분이 자신의 가정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자 하시는 경우 태블릿을 가지고 가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바로 등록해 드리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방문하는 환자분들은 의식과 인지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하지가 않은데, 이 경우는 연명치료에 대한 평소 환자분의 입장에 대해 직계 가족들의 의견을 모으시도록 말씀드린다. 어차피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의견 수렴이다.
그다음으론 진단서가 필요하다. 아직 살아계시므로 사망진단서가 아닌데, 사망진단서는 그야말로 ‘진단서’라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목도한 의사나 사망을 예견한 상태에서 48시간 이내에 진료한 의사가 작성할 수 있다(그 의사가 일하는 의료기관에 함께 소속된 의사들이 의무기록을 토대로 작성할 수도 있다).
현재 임종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추후에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를 작성해야 하는 의사들이 사망 원인을 추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상병명과 우리가 방문하여 진료한 내용을 꼼꼼히 써서 드린다. 원인 불명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아니라는 것을 경찰에 알려야, 불필요한 부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방문진료 과정에서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하거나 사망선언을 임종 순간에 해주시는 의사분들도 있다. 전공의 시절 이후에는 임종을 예견하는 내용의 진단서만 써드려왔던 내 입장에선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런 행운을 누리시면 좋겠다. 가정에서 임종하시는 분들의 경우, 1~2주 이내의 임종을 예견하며 진료한 의사라면 사망진단서를 쓸 수 있도록 법의 변화를 꾀하면 어떨까. 환자도 의사도 준비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법도 고령화 준비가 필요하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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