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
동아시아의 전근대 학술사는 경전 해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몇몇 텍스트에 대한 주석이 시대마다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른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오래된 지향을 따라, 새로운 저술보다는 경전에 대한 풀이와 부연의 방식으로 자신의 학문 견해와 시대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전 해석의 계보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이견과 논쟁이 담겨 있다.
<논어> 역시 함축된 표현 때문에 여러 이설이 부딪치는 구절이 많다. 공자가 위나라 대부 영유를 평가한 대목도 그렇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군주가 훌륭하여 이상을 실현할 만한 때를 만나면 자신의 지혜를 발휘하여 경륜을 펼치고, 무도한 군주의 치하에서는 어리석은 듯이 행동하며 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게 일반적이다.
주희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근거는 영유가 무도한 군주인 성공 때 위험을 무릅쓰고 동분서주 온갖 힘을 쏟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는 기록이었다. 지혜롭다는 이들은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 위급한 순간에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영유를 칭송한 내용으로 해석한 것이다. 불을 끄기 위해 스스로 불로 뛰어드는 무모함이기에,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했다. 어리석은 체하며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지향이다.
주희의 영향이 컸던 조선과 달리, 중국의 학자들은 주희 이후에도 현대까지 전자의 해석을 따르는 예가 많다. 정약용은 여러 학설을 두루 보았고, 영유에 대한 주희의 사실관계 인식에 오류가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구절에서만큼은 주희의 마음으로 공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 온당하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여 그저 자기 몸과 가족이나 겨우 보전하면서 입을 닫고 팔짱 끼고서 ‘영무자의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지식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신이 깔려 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약삭빠른 사람보다는 앞뒤 재지 않고 나서는 우직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건, 정약용의 시대만이 아닐 것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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