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훈’이라는 이름의 뒷걸음질
지난 3일 국방부는 장병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인 정신전력과의 과장에 현역 군인을 보임하고, 정신전력기획관이라는 명칭의 국장급 보직을 신설하는 내용의 조직 확대·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는 새로 취임한 국방부 장관이 장병의 정신전력 강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2월7일 제정된 ‘국방부직제’는 국방부에 ‘군인정신의 함양, 사상선도, 선전 및 보도에 관한 사항’을 분장하는 ‘제2국’을 두었고, 이는 ‘정훈국’으로 불렸다. 그런데 당이 무력을 지배한다는 전제에서 부대 내에 사상통제를 위한 정치위원까지 배치한 구소련이나 중국·북한 등을 제외하면, 국방부 내에 군인에 대한 사상교육을 전담하는 부서를 둔 국가는 그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는 중국에서 활동한 광복군 요인들이 공산당의 군사 조직인 인민해방군과 삼민주의 등 국민당의 정치 이념을 강조한 국민정부군에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광복군 총사령부에는 정훈처가 있었으며, 초대 국방부 정훈국장 역시 광복군 출신이었다.
창군 초기의 국군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은 물론, 정부와 군의 전복을 노리는 내부의 적과도 치열한 투쟁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과 혼란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민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장병들에 대한 민주주의와 반공을 내용으로 한 이념적 무장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으로부터 70년의 상황에 대한 평가이다.
장병들은 명령과 복종이라는 권력적 질서를 전제로 하는 군대 조직에 속해 있고, 그 범위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또한 그 모두가 성인인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각자가 독립적인 판단력을 갖춘 인격체이다. 그리고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질서의 내용, 그리고 이를 수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군의 임무 등을 가르치는 것은 의무교육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장병들에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명백한 적’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초적인 사항을 반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를 악용한 일부에서는 대적관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지도자에 대해 공격을 일삼기도 했는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한편 일각에서 강조하는 사기 진작이나 정신력 강화라는 것은 실질이 수반되지 않는 공허한 정신주의의 강조에 빠질 위험성이 크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주입식의 정훈교육 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훈이라는 용어가 현실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군인사법’이 기본병과의 하나로 정훈병과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정훈은 정치훈련(政治訓練)의 줄임말인 ‘정훈(政訓)’이었다. 그런데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국방부는 이를 ‘공보정훈(公報正訓)’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이번 개정을 통해 이는 정신훈련을 줄인 ‘정훈(精訓)’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이다. 말장난도 이 정도면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해당 병과의 임무와 성격을 고려하면 그 명칭은 그저 ‘공보’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제 정훈이란 그 존재의의를 상실한 퇴영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여전히 정훈의 유효성을 강조하려면, 먼저 누군가의 ‘모가지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붕짜자 붕짝”을 외치던 어느 퇴역 육군 중장에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군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 같다.
최종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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