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 양당 체제는 끝났다
양당 체제는 끝났다. 아니 끝나야 한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겉보기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에 엄청난 충격을 준 것처럼 보인다.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곧바로 인요한 연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원회를 꾸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고, 큰 격차로 이긴 민주당은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에 몰두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모두 2024년 봄에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한 행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예측할 수 없는 민심의 동요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승리한 당이나 패배한 당이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확연하다.
민심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는 것은 물론 의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선거 결과가 아무리 압도적이더라도 오만하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었음에도 정당들은 대체로 선거가 지나면 민심을 잊는 경향이 강하다. 대통령이 ‘국민’이라는 낱말을 입에 자주 올리면 정권이 위기에 처한 징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민심과 민생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것은 선거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선거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지긋지긋한 정쟁의 무한반복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투표해도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을 반영하고 실현하려는 좋은 의도로 일할 것이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담처럼 좋은 의도만으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좋은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 제도와 체제 때문이다. 민심과 민생이 선거 때만 반짝 드러났다가 선거 후엔 잊히는 것은 바로 불합리한 ‘선거 제도’와 ‘양당 체제’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양당 체제는 끝났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뿐더러 종종 제멋대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양당 체제는 두 개의 주요 정당이 거의 모든 선거에서 투표를 장악하고, 선출된 공직자 대다수가 두 주요 정당 중 하나의 구성원인 시스템이다. 양당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정당이 입법부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다수당이 되고, 다른 정당은 소수당이라고 한다. 두 정당의 의석수 비율이 크게 기울지 않으면, 양당 체제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안정적 정당 제도이다.
양당, 최대의 정치적 ‘이권 카르텔’
양당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건강한 정치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반대당을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교체될 정치적 경쟁자로 서로 인정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정당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존중되고 합리적 토론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정당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양당 체제는 극단화되고 있다. 우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결코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지 않는다. 서로를 반국가세력 또는 반민주세력이라고 비방하며 싸우는 진영정치의 전쟁터에서 상대당은 제거해야 할 적일 뿐이다. 문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이 적대적 관계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대방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지위와 기득권이 보호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 제도 개혁은 뒷전으로 하고 총선에서 당선하고 의석을 확보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양당은 우리나라 최대의 정치적 ‘이권 카르텔’인 셈이다. 이런 양당 체제에서는 긍정적 정책 경쟁보다는 부정적 정권 투쟁이 난무하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수용될 수 없다.
어느 정당이나 말로는 국민 통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디커플링’도 극단적 양당 체제의 부정적 산물이다. 문재인 정권이 ‘적폐 청산’으로 우리 사회를 두 동강 냈다면, 윤석열 정권은 ‘반국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분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대외적으로 평화관계를 맺으려면 내부적으로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칸트의 말처럼 당내 민주주의가 취약한 양대 정당은 필연적으로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충격적 결과에도 양당에선 ‘친윤’과 ‘친명’만 더욱 공고해진다.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매국노(비명계)를 처단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당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이원욱 의원 지역구에 걸린 일이 민주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정치적 폭력을 조장하는 팬덤정치가 정치 문화를 더욱 극단화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양당 체제가 제도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선거 결과가 어떻든 또 설령 선거로 참신한 인물들이 아무리 많이 등장한다고 해도 대립적인 진영정치는 끝나지 않고 적대적 공생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정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많은 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혁신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국민의힘이 혁신위원회에 많은 여성 위원과 젊은 세대를 참여시키더라도 권위주의적 당정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에 쓴소리,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배척당할 것이다. 물이 고여 썩어가는 연못에 깨끗한 물을 아무리 많이 부어도 금방 더러워지는 이치와 같다. 깨끗한 물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건강한 연못을 가꾸려면 관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연정 통한 타협’이 유일한 활로
양당 체제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양당 체제에서 유권자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기보다는 두 정당 중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당도 싫고 저 당도 싫기는 하지만 저 당이 ‘더 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는 유권자들이 어느 주요 정당도 자신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고 느끼며 정치에 대한 좌절과 환멸로 이어질 수 있다.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30%선에서 초접전을 벌이고,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은 20%에서 30% 사이를 오간다. 우리가 양당 체제에서 어느 정당을 선택하든 이런 선거 제도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다양성을 결여한 양당 체제는 국민 상당수의 견해를 반영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데 한계가 있는 양당 체제는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양당 체제에선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양극화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은 다양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정책보다는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감성적 메시지에 의존하게 된다. 양극화 수사를 자주 사용하는 포퓰리즘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의 온상이 된다. 이렇게 가짜뉴스와 분열적인 적대정치가 만연하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더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사람들이 현재 제도가 자신의 의견과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양당 체제는 사실 끝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양당 체제와 합리적으로 결별해야 한다. 내년 총선과 맞물려 신당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우리는 독일 정당 제도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한다. 전쟁 후 독일은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양당 체제를 채택하였지만, 1980년대 들어 녹색당이 제3세력으로 등장함으로써 독일 정당 체제는 합리적인 다당 체제로 전환되었다. 한때는 다당제가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통치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불안정하다고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유사한 정책 목표를 공유하는 정당 간 연정을 통해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한다.
다당제에서는 어느 정당도 절대다수당이 될 수 없는 까닭에 연정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토론과 협상과 타협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양당 체제가 국민과 사회를 분열시킨다면, 우리는 이제 적어도 중도 무당층을 반영할 수 있는 제3의 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연정을 통한 타협’만이 적대적 진영정치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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