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세진 K문학…유럽 이어 美 최고상도 품을까

안시욱 2023. 11. 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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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휩쓰는 한국 문학
전미문학상 수상작 16일 발표
최종 후보 정보라 <저주토끼>
"독창성 높아 가능성 충분"
한국소설 해외 번역 대폭 증가
해외출판사, 韓작가 잡기 경쟁


<저주토끼>에 이은 <고래>의 2년 연속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 선정,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국 최초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

최근 몇 년간 유럽 문학계를 달구고 있는 한국 현대소설의 매력이 세계 최대 영어서적 시장인 미국에서도 통할까. 그 가늠자가 될 만한 시험무대가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15일 오후 8시)에 열린다.

이날 발표하는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른 5개 작품 중 정보라 작가(사진)의 <저주토끼> 영어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출판문학상인 전미도서상에 한국 소설이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저주토끼>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조남주 장편 <82년생 김지영>과 김보영 소설집 <종의 기원>이 번역문학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게 전부였다. 1950년 제정된 이 상은 매년 소설·시·논픽션·번역문학·청소년 문학 등 5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저주토끼>는 번역가 안톤 허가 영어로 옮기고 아셰트출판그룹 산하 앨곤퀸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2018년 영어를 시작으로 17개 언어로 번역돼 20여 개국에 소개됐다.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저주를 내리는 토끼 인형을 소재로 현대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그렸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저주토끼>는 독창적인 소재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이번 5개 후보작 중 유일하게 (상대적 소외지역인) 아시아 작품”이라며 “충분히 수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주토끼>가 부커상에 이어 전미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른 건 국제무대에서 높아지고 있는 한국소설의 ‘몸값’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숫자가 말해준다. 10년 전만 해도 국제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 한 편도 없었는데, 올 들어선 이미 열 편이 명단에 올랐다. 손원평의 <프리즘>은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2위를 차지하는 등 아시아 문학대국 일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받을 때만 해도 다들 ‘문화 변방국’의 이례적인 성과로 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전미도서상까지 받으면 한국문학도 K팝처럼 세계 문학의 주류로 공인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문학을 찾는 해외 수요 확대는 ‘공급(번역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지원한 올해 한국문학 해외 번역 출간 건수는 115건으로, 10년 전(53건)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외국어 종류도 기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10개 언어에서 동남아시아, 동유럽 지역 언어를 포함한 23개 언어로 확대됐다.

이러다 보니 인기 한국 작가 작품마다 치열한 판권 확보 경쟁이 벌어진다. 지난 4월 런던국제도서전 이후 잇따른 ‘러브콜’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세탁소>가 대표적이다. 5월과 8월에 걸쳐 영미권 출판사와 약 2억50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이영도 소설 시리즈 <눈물을 마시는 새>도 영미권 출판사가 선인세 3억여원에 판권을 사 갔다.

한국의 인기 작가들이 보여준 기발한 상상력과 영화 드라마로 검증된 ‘K콘텐츠’ 경쟁력에 힘입어 이제는 신진 작가들을 ‘입도선매’하려는 해외 수요도 생기고 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해외 출판사들이 국제문학상 수상작을 위주로 판권 확보 대상을 찾았다면, 요즘에는 ‘싹수 있는’ 신인 작가를 싼값에 발굴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출판계에선 K문학이 K팝처럼 세계를 휩쓸려면 지금처럼 탄력받았을 때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솜씨 좋은 번역가를 여럿 키우는 것이나 해외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북 마켓을 기획하는 건 개별 출판사나 작가가 하기엔 너무 큰 일이어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 분야 지원 예산을 올해 474억원에서 내년 418억원으로 12% 줄였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분야인 만큼 물을 더 줘야 하는데 오히려 줄인 셈”이라며 “출판사들의 영세한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그 많은 리스크를 떠안고 해외시장에 도전할 출판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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