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민 KBS’의 인사·콘텐츠 칼바람, 이게 공영방송 장악이다
박민 KBS 사장이 취임 이튿날인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사장은 “KBS가 공영방송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정중히 사과한다”며 허리를 숙였다. 전 사장 시절 KBS 보도를 불공정·편파 방송으로 간주하며 선을 그은 것이다. 이어 박 사장은 “향후 불공정·편파 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자·PD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엄정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강도의 콘텐츠 감별과 문책을 예고하면서도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공정성 논란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40건 제재를 받은 프로그램도 있다”며 불공정 방송 사례를 언급했다. 이런 외부 제재가 문책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친여권 위원 우위로 재편된 방심위는 최근 비판 언론을 옥죄는 정부 기조에 맞춰 무리한 심의·징계를 강행·남발해 안팎의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 입맛에 맞지 않고 비우호적 보도를 찍어내는 방심위 결정을 불공정 판단 기준으로 삼는 건 온당치 않다. 박 사장은 “내·외부 지적을 받은 불공정 보도들을 백서로 발간해 KBS 보도의 지침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 기준 또한 자의적으로 비칠 뿐이다.
‘낙하산’ 소리를 듣는 KBS 사장이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에 불공정·편향 딱지를 붙여 문제 삼고 책임을 물으려는 것인가. 그러면 정부 비판 취재와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정성·신뢰 회복이 아니라 공영방송 장악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잖아도, 박 사장은 취임 첫날인 지난 13일 칼바람 인사를 단행했다. 교양 프로그램 시청률 1위였던 <더 라이브>가 갑작스럽게 편성에서 빠지고, 여기저기 진행자가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9시 뉴스> 등 주요 뉴스 앵커들도 시청자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 채 하차했다. 사측이 제작진 의견을 무시하고 편성 규약을 어기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무너뜨린 처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군사작전 벌이듯 KBS 물갈이에 나서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KBS를 쥐고 흔들겠다는 정부의 조급함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은 정권의 이익을 앞세워 공영방송을 점령하고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박 사장의 행태는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밝힌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는 말과도 정반대다. 공영방송이 또다시 정권의 전리품이나 소유물로 전락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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