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요구 마지못해 들어줬는데…사장은 수사받고 장관은 벌금낼뻔
정부부처 단협 결국 시정명령
문체부는 노조간부 원하면 전보
중기부는 인사낼 때 미리 알려야
고용부 "인사권 침해, 노조법 위반"
"노조 부당노동행위도 처벌해야"
밑질 게 없는 노조, 단협 놓고 딜
勞 과도한 타임오프·운영비 요구
수용한 사업주만 수사대상 올라
지난달 7일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실과 인사혁신처장실에 각각 한 통의 등기우편물이 배달됐다. 발신지는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이들 부처가 국가공무원노조 요구에 따라 도입한 단체협약 중 일부 조항이 사용자의 인사권을 침해해 공무원 노조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었다. 60일이 지나도 시정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겨 있었다.
노조 요구 들어줬다 장관이 벌금 낼 뻔
14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문체부가 노조와 맺은 단협에는 ‘노조 간부가 부서 전보가 필요한 경우 문체부에 요청할 수 있으며, 문체부는 노조 활동 보장을 위해 이에 응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체결된 중기부 단협도 “중기부는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 인사 등을 사전에 알려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이 조항들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침해한 데다 교섭 대상도 아니어서 공무원 노조법 위반이란 게 고용부 설명이다. 각 부처가 관련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노조와 노조위원장은 물론 사용자인 장관도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각 부처 장관에게 인사 관련 직무를 위임한 인사혁신처장도 사용자로, 시정명령 대상에 포함됐다.
해당 부처엔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노조 측이 곧바로 관련 조항을 고치는 데 동의하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부처별로 노조와 단협을 각각 체결하는 만큼 언제, 어느 부처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노조 ‘몽니’에 수사 대상 된 대표
민간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위법한 단협을 개정하려고 해도 노조가 합의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아 대표는 지난 5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에 출석해 노조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았다.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이른바 ‘고용세습’ 단협 조항 때문이다. 안양지청은 지난해 11월 기아 노사에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공문과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다.
회사 측은 곧바로 대표이사 명의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에게 ‘단협 개정에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해당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또 두 차례 사내 홍보지를 통해 “기아에 여론의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시정 필요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노조가 미온적 반응을 보이면서 대표가 조사받게 됐다.
회사 측은 지난달 임금 협상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을 약속하고 난 뒤에야 노조와 고용세습 조항 폐지에 합의할 수 있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행 법규에 따르면 법에 위반되는 단협이어도 노조 동의 없이 변경할 수 없다”며 “노조의 ‘물귀신’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당노동행위, 사업주만 처벌
사용자가 노조 강요로 불가피하게 제공한 ‘부당 지원’이 적발돼도 사용자만 처벌받는 현행 부당노동행위 규정도 문제다. 고용부는 지난 2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운영과 ‘운영비 원조’근로감독에서 총 62개 사업장을 점검해 39곳에서 위법 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노조에 1년간 10억40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한 사업장, 타임오프 법정 한도를 10배 초과해 인정해준 부당노동행위 사례 등이 드러났다.
이런 행위가 적발돼도 현행 노조법에 따르면 사업주만 처벌될 뿐 지원을 강요한 노조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조가 법적 한도를 넘는 타임오프를 요구해도 회사가 거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기업이 돈을 주고 사업장의 평화를 사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기 어렵다면 사업주에게 금전 지급 등을 강요한 노조도 사용자와 동등하게 처벌해야 형평에 맞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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