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병원 로비 점거해도, 사장실 막아도 '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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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불법파업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하자 산업 현장에서는 노조의 사업장 무단 점거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노조법은 주요 사업시설 점거를 금지하고 있지만 '주요 시설'이 뭔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무단 점거에 사실상 무방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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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불법파업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하자 산업 현장에서는 노조의 사업장 무단 점거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노조법은 주요 사업시설 점거를 금지하고 있지만 ‘주요 시설’이 뭔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무단 점거에 사실상 무방비나 다름없다. 노조법 개정안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별개로 이처럼 불합리한 노동 법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A사 조합원 500여 명이 2012년 1~6월 본사 1층 로비를 점거하고 사장실 인근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에 대해 ‘파업 기간에 비해 집회와 농성 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18년에는 B대학병원 노조 조합원 200여 명이 35일간 병원 1층 외래접수동 정면 출입문을 폐쇄하고 로비 절반 이상을 점거한 사건과 관련해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판단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민원이 많았지만 대법원은 “수술 등 핵심 업무가 중단되거나 혼란이 초래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노조가 병원 로비를 점거해도, 사장실을 막아서도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주요 생산시설을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07년 사업장 일부만 점거하는 ‘부분적·병존적 점거’를 허용하면서 사실상 노조의 ‘직장 점거’를 막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쟁의권만 과잉보호하는 法
두루뭉술한 '점거 금지기준'…法 웬만하면 점거 용인해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선 노조의 사업장 점거가 수시로 일어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는 지난해 6월 초 경남 거제 조선소 도크를 51일간 점거했다. 당시 회사 피해만 8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조 소속 조합원 수백 명은 지난해 2월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투쟁을 벌였다. 현대제철 노조는 지난해 5월 충남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무단으로 146일이나 점거했다. 물론 시설 점거에 엄격한 판결도 없진 않지만 산업계에선 ‘그때그때 다른’ 판결을 줄이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더욱 명확하게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업장 점거로 기업 활동에 차질이 빚어졌을 때 기업들이 손쓸 수 없는 상황도 문제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 기간에 중단된 업무를 메우기 위해 사용자가 해당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하거나 대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대체근로 금지’ 규정이다.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2019년 대리점을 상대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택배대란이 벌어졌을 때 원청인 CJ대한통운은 직접 고용한 ‘직영 기사’를 통해 배송을 시도했다. 이에 노조가 전국 택배 터미널에서 직영 택배 차량을 막거나 강제로 화물을 내려 업무방해죄로 기소됐다. 일부 하급심 법원은 직영 기사를 통한 배송을 위법한 대체근로 투입이라고 판단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이처럼 기울어진 제도는 주요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판례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파업 시 구직자를 임시근로자로 쓰는 걸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최근 폐지했다. 독일과 일본도 대체근로 자체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노사 간 힘의 균형을 고려하면 사용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대체근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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