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초범이면 '兆단위 기술' 훔쳐도 집행유예
반도체 기술 유출 적발 4배 급증
삼성 화성공장 통째 中 복제 시도
3000억 피해 … 5천만원 보석 풀려나
퇴직자·협력사가 기밀 빼돌리기도
中세미나서 '자율차 눈' 넘긴 교수
도면 320개 USB 유출한 연구원
집유 선고…"법원이 범죄 방조"
삼성전자 상무와 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낸 반도체 전문가 최진석 씨(65)가 지난 5월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체포됐다. 삼성전자 화성공장 16라인을 중국에 통째로 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죄목은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다. 중국 청두시와 합작사 CHJS(청두가오전)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공장 기초공정데이터(BED)와 공정 배치도, 설계 도면 등을 빼돌리려 했다는 게 사정당국의 설명이다.
CHJS 설립은 최씨가 대만 폭스콘에서 약정받은 8조원 규모 투자가 불발되면서 좌초했다. 사정당국은 이미 넘어간 기술만으로도 한국 반도체업계가 최소 300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씨 측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정당한 합작사 설립 및 인재 영입 과정이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법정 공방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최씨는 보증금 5000만원을 내고 지난 10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반도체 기술 유출 네 배 증가
14일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적발된 기술 유출 사건 104건 중 60건(58%)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과 관련돼 있다. 조선과 자동차, 기계 등의 분야에 집중됐던 산업스파이의 활동 범위가 첨단 산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국정원은 최근 5년간 국가전략기술 유출로 기업이 본 피해액을 25조원 규모로 보고 있다.
반도체 관련 기술 유출 시도가 부쩍 늘었다.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5년여간 발생한 사건만 30건으로 2013~2017년(7건) 대비 네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기술 유출은 주로 퇴직자나 협력사를 통해 이뤄졌다. 반도체 웨이퍼 연마제·연마 패드 제조사 직원 A씨(55)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9년 6월 임원 승진 인사에서 누락된 그는 중국 업체와 동업해 회사를 차리고 반도체 연마제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웨이퍼 연마제와 연마 패드를 제조하는 기술은 국가전략기술로 분류돼 산업기술보호법 관리 대상에 속한다.
A씨는 업무용 PC로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기밀 자료를 열람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중국으로 유출했다. 특허청은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대전지검과 공조 수사해 A씨 일당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이 유출한 기술의 경제적 피해 규모는 연구개발비와 세계 시장 규모, 한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할 때 최소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21년 12월 재판에 넘겨진 웨이퍼 이송장치(OHT) 첨단기술의 중국 유출 사건도 반도체업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OHT는 반도체 공장 등에서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정밀 부품을 자동 이송하는 설비다. 반도체 웨이퍼를 이동시키는 스마트팩토리 구현의 핵심 설비다. OHT를 제조하는 코스닥 상장사의 협력회사 임원 B씨(47)는 OHT 도면과 기술자료를 중국에 있는 일본 업체에 빼돌렸다. 이 기술 유출로 국내 기업은 최소 1150억원 넘는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법원 “개인적 이익 적다” 집행유예
국가전략기술을 유출하려는 시도는 더 교묘해지고 있다. 2003년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외국 경쟁사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수준이었다. 최근의 국가전략기술 유출 시도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간다. 산학협력과 기술 컨설팅을 빙자해 기술을 빼돌리고 클라우드와 SNS도 활용한다.
중국 ‘천인계획’(해외 고급 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연루된 KAIST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는 2020년 중국 충칭이공대 자율주행자동차 연구 과제에 참여하며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로 개발한 라이다 기술 성과물을 빼돌렸다. 라이다는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며 10년 내 1300조원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장치다. 기술을 유출한 교수는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의 규모가 크지 않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2015년에는 인도 국적 연구원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재직하며 석유시추선 등 특수선박 전기장치 설계도면 320개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유출했다. 설계도면 가치를 모두 더하면 3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법원은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연구원이 본국으로 귀국하며 처벌이 마무리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산업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보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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