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땐 ‘도미노 인상’, 지금은 ‘꼼수 인상’…‘물가 통제’ 부작용 어른거린다
정부 “슈링크플레이션 등 부작용 대응…공정위와 조치 검토”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10여 년 전 물가 정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28개 품목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가격 동향을 살피고, 인상 자제를 요청하며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밀착 관리 정책'이다. 그러나 제품값은 유지한 채 용량을 줄이는 '꼼수 인상' 방식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정부 주도 물가 통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 가격 저항감 줄이려…가격은 그대로, 용량 줄인다
정부는 당초 쌀, 배추, 무 등 농축산물과 치킨, 피자, 김밥 등 외식 메뉴 19개 품목의 가격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을 통해 파악해왔다. 그러나 물가 오름세가 잡히지 않자 가공식품 9개 품목까지 포함해 총 28개 품목의 가격을 점검하기로 했다.
추가로 포함된 가공식품은 밀가루, 라면, 빵, 우유, 과자, 설탕 등으로, 모두 소비자의 물가 체감이 큰 품목들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품목별 물가 관리 전담자를 지정하고, 식품기업 방문 및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가격 인상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시작되면서 식품업계의 '꼼수 인상 방식'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다. 풀무원은 지난 3월, 핫도그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둔 채 한 봉 당 핫도그 개수를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였다.
해태제과는 지난 7월 고향만두 한 봉지의 용량을 415g에서 378g으로, 고향김치만두의 용량을 450g에서 378g으로 조정했다. 오비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 제품의 캔당 용량 가격을 375㎖에서 370㎖로 줄였다. 제품에 들어가는 원료의 함량을 줄이는 '스킴플레이션'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주스와 포도주스의 과즙 함량은 100%에서 80%로 변경됐다.
이 같은 현상은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품의 양을 줄여 가격을 유지하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소비자 저항감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은 용량에 비해 가시적인 요소다. 특히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용량보다 가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사실상의 가격 인상'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에 구매했던 상품이라면 중량과 품질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품목별 물가 관리한 MB정부, '물가 인상' 역풍
기업의 이런 '꼼수 인상'이 정부의 물가 억제로 인해 발생한 일종의 풍선효과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도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원재료 인상 폭보다 제품 가격을 더 올리거나, 용량을 줄이면서 가격을 사실상 인상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유혜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품목별 물가 관리는 일종의 가격 통제인데, 가격 통제로 물가를 잡은 전례가 없다. 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할 때 부작용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부의 물가 개입으로 가격 인상을 미룬 기업이 나중에 이윤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의 인위적인 개입을 통한 가격 통제가 지속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실효성의 측면에서도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품목별 물가 관리 정책을 실행했던 MB정부의 사례가 거론된다. MB정부는 높은 물가 상승률에 대응해 빵과 라면 등 52개 품목을 정해두고 밀착 관리하는 물가안정책임제를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평을 받았다. 도입 후 약 3년 5개월간 해당 품목의 평균 가격 상승률은 20.42%에 달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3.21%)을 크게 웃돌았다. 이후 '도미노 가격 인상' 흐름이 이어졌고, 정권 말기에는 '정부 옥죄기'를 경험한 식품업계가 인상률을 크게 높이면서 물가 인상의 역풍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미쳤다.
"'꼼수 인상' 정직한 판매 아냐…불신 자초 행위"
정부는 현재 정부의 대응 방식이 MB정부의 물가안정책임제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취지는 같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차이가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업계에 대한 일방적인 요청이 아니라, 민관 간 상호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려되는 부작용인 '꼼수 인상'에도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서는 용량이나 함량 변경 사실을 소비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제품 용량에 변화를 주는 경우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거나, 용량을 줄이면서 포장재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브라질 정부는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해당 기업이 이를 6개월 이상 포장재에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를 찾아 식품 가격을 점검한 뒤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의 불신을 자초하는 행위이며, 기업의 지속적인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량을 줄이거나 개수를 줄이는 경우,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들이 알 수 있는 조치를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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