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회계`에 빠진 99년생 `당찬 언니`… "관리회계SW업계 `슬랙`이 목표"
작년 서비스론칭, 팁스·은행권 청년창업재단 캠프 잇따라 선정돼
요즘 창업자 스토리만으로 투자받기 힘들어… 재무 중요성 커져
"진입장벽 높아 우리 따라잡기 힘들것… 내년에 북미·유럽 진출"
인터뷰를 위해 14일 만난 '아이씨'(Aicy)의 에이미 리(이봄, 24·사진) 대표는 한눈에 봐도 앳된 얼굴이었다. 1999년생으로 24살인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언니'로 돌변했다.
이 대표는 인공지능(AI) 자동 재무관리 플랫폼 아이씨를 운영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선 재무계획과 분석(FPNA, Financial Planning and Analysis)을 다루는 플랫폼이 블루오션으로 인식되며 한창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처음이다.
이 대표는 아이씨에 대해 "회사 경영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을 위해 데이터를 관리하는 서비스 중 하나"라며 "기존 엑셀 스프레드로 작업하던 것이 기술이 발전하며 서비스 스프레드 형태로 나온 것이고, 해외에도 이런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이씨는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론칭, 올해 6월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고, 지난 10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디데이x테크'에 최종 선정된 유망한 스타트업이다.
이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진학해서도 역사를 전공했는데, 그러다보니 과거에 대한 기록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며 "2학년 때 회계를 접했는데 회계가 기업의 역사이자 유일하게 검증 가능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회계'라는 학문에 빠진 그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스타트업에 들어가 글로벌 IR(기업설명회)을 담당하면서 여러 해외 벤처투자자(VC)들과 만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투자를 받아야하는 스타트업과, 투자를 해야 하는 벤처투자자 모두 기업의 재무정보를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회사는 재무관리를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지만, 인원 자체가 적고 업무가 세분화돼 있지 않은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에게 재무관리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 대표는 "회계를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정보'인 회계정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웠고, 기술을 통해 이런 정보들을 제대로 쓸 수 있게끔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침 몸담고 있던 ERP회사는 회계 프로그램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사내벤처를 구성, 이 기술을 활용해 2019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R&D)에 나섰다. 베타 서비스로 운영했던 1년여간 300곳의 회사들이 아이씨 플랫폼을 체험했으며, 이 중 7~8%에 해당하는 고객이 아이씨의 유료 고객으로 전환했다.
물론 시장에 없던 서비스를 알리고 사용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대표는 "1년간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불모지일 줄은 몰랐다"며 "재무정보를 가지고 한땀한땀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아예 재무정보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려웠고, 국내에서 벤치마킹할 기업이 없어 가격정책도 여러 번 수정하면서 시장 반응을 살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의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재무관리의 중요성은 스타트업은 물론 투자사에게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예전에야 창업자의 스토리나 비전만으로 또는 기술력만 보고도 시리즈A까지는 투자받을 수 있었는데 요즘엔 시장이 어렵다보니 초기 시드 투자를 받을 때부터 재무관리를 요구하는 VC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활성화 고객수(MAU)가 아무리 많고 매출이 늘어도 영업이익이 없거나 매출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망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믿을 수 있는 건 숫자밖에 없다'는 인식들이 확산하고 있다"고 투자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아이씨의 내년 목표는 북미와 유럽 등 글로벌 진출이다. 국가별로 세무 규정이 다른 재무회계와 달리 현지화 작업 없이 다국어 처리만 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관리회계 서비스여서 진출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보고있다.
다만 아이씨 플랫폼은 대부분 연동형 회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기업과는 차별점이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운영되는 해외 관리회계 서비스들은 대부분 기존 ERP 프로그램들이 오픈해놓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와 연동해 자료를 분석하는 구조"라면서 "회사마다 원하는 솔루션이 다르니 커스터마이징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해외 FPNA 시장에 유니콘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씨는 ERP 프로그램의 API에 접근하지 않고 애초에 기장 데이터를 엑셀로 받아 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추출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까지는 규칙 기반의 AI를 활용해 20가지 이상의 지표를 리포트로 뽑고 '현금 런웨이'(Runway)부터 손익분기점분석(CVP)·자산회전율·재무구조 등 재무현황을 시각화 보드로 정리하는 단계다. 향후에는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할 예정이다.
2015년부터 ERP 제작에도 참여한 이 대표는 "회계 프로그램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 100% 이해하려면 ERP를 직접 개발해봐야 하는데, 여기에만 몇 년이 걸린다"며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라 아이씨의 기술력을 따라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대표는 "유치원 때부터 욕심이 많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고, 부모님 잡아먹겠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타고난 '욕심'에 용기와 사회성이 추가된 건 중학교 진학을 무작정 중국 로컬학교로 선택하면서였다.
이 대표는 "할 줄 아는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마'(안녕하세요) 밖에 없었다. 외국인 학교도 아니고 로컬 학교로 진학하면서 3~4개월은 울면서 벙어리 생활을 했지만, 3년 뒤 고등학교 진학 시험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10대 때 철인 3종 경기에도 나가고, 아이돌 '덕질' 유튜브 채널로 수익도 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끈기와 도전을 배웠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꿈은 아이씨 플랫폼을 FPNA계의 '슬랙'(Slack)으로 키우는 것이다. 슬랙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사용하고 있는 기업용 메신저 플랫폼이다.
그는 "미국 진출을 도와주고 있는 VC들도 미국에 법인을 차려 시작해야 거기서 성장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 저만 해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들을 쓰지 않느냐"며 "아이씨를 국경이나 심리적 장벽 없이 전 세계에서 쓰이는 FPNA 시장의 기업 간 거래(B2B) SaaS로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눈을 빛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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