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정인이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정인아 미안해' 뼈아픈 반성·참회
'아동학대 특례법' 등 마련했지만
쉼터·전담인력 확대 등 지지부진
학대범죄 3년새 오히려 2배 늘어
눈웃음이 참 예뻤던 아이. 밝고 쾌활했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과 이마 등에 자꾸만 상처가 났다. 하루하루 야위어 가던 아이의 몸은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겨드랑이에 살이 있던 부분이 다 없어지고 가죽만 남았다. 기아로 말라버린 아이는 배만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머리에 빨갛게 멍이 든 채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생후 16개월, 입양된 지 9개월 만인 2020년 10월 13일 배와 머리 등에 큰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다 숨진 아이. 양부모에게 ‘진상’이라고 불린 아이의 이름은 정인이다.
“지금까지 봤던 아동학대 피해자 중 손상 상태가 가장 심했습니다.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따로 부검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인이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부검의는 이렇게 말했다. 정인이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또 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져나간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반성과 참회였다.
정인이가 세상을 떠난 뒤 국가의 아동학대 대응 체계는 바뀌었다. 연 2회 이상 의심 신고 시 즉각 분리, 학대피해아동쉼터 확충 및 학대예방경찰관(APO) 충원 등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안이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2021년 3월부터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즉각 분리 제도의 실효성·적절성, 열악한 인프라 등이 문제점으로 꼽히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적 공분을 의식한 단기적 보여주기식 대책을 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쓴소리였다.
그 쓴소리에 담겼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이 거주지가 아닌 다른 광역 시도에 있는 쉼터를 이용한 사례는 104건에 달했다. 정부가 학대피해아동쉼터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복지부는 2021년 8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아동학대 대응 체계 보완 방안’에서 당시 105곳인 학대피해아동쉼터를 2022년 140곳, 2025년에는 240곳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8월 기준 쉼터는 136곳으로 지난해 목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학대피해아동쉼터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인 3개월이 지난 뒤 원래 가정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아동들을 장기적으로 맡을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은 치유 및 회복 전문기관이 아니라 보육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 동안 서울시 내 보육원에 입소한 아동 934명 중 261명(27.9%)이 학대 피해 아동으로 집계됐다. 최근 3년간으로 보면 보육원 입소 아동 중 학대 피해 아동 비율은 33.9%로 높아진다.
아동학대 전담 인력을 늘리겠다는 계획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9~2023년 APO 인력 현황’을 보면 전국 시도경찰청의 APO 인력은 2021년 737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후 2022년 707명에서 올해 8월 698명으로 줄었다. 앞서 정부는 정인이 사건 직후인 2021년 8월 당시 600~700명 수준이던 전문인력을 올해까지 260명 추가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동학대 범죄는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2019년 4645건에서 지난해 1만 1970건으로 2배가량 뛰었다. 특히 올해 1~8월 검거 건수가 8808건으로 한 달에 1000건 이상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었습니다.” 정인이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는 어린이집 원장의 증언이다. 정부의 통계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홀로 학대를 감내하고 있는 또 다른 정인이는 지금도 너무 많다. 아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구해내는 일, 그리고 튼튼한 보호막을 만드는 일. 짧고도 아픈 삶을 살다 간 정인이가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인이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김경훈 기자 styxx@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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