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마을' 꿈꾸는 한국 독문학의 대가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11. 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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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젊은 괴테의 집' 세운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아시아 女학자 첫 괴테금메달
지금껏 쓰고 번역한 책 70여권
사재 털어 괴테문화공간 세워
獨 희귀 서적 등 200여권 보관
"사람이 뜻가지면 얼마나 클지
자신을 키우는 길 보여주고파"
전영애 교수가 여주 강천면 소재 '여백서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독협회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무려 1000여 명의 방문객이 주말 교통체증을 뚫고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의 한 공간에 모여들었다. 괴테가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크푸르트 집을 본떠 만든 '젊은 괴테의 집' 개장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이다. 부산과 제주도는 물론, 독일에서 찾아온 방문객도 있었다. 먼 길을 달려온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편에선 회색 단발머리의 원로 학자가 2층 계단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젊은 괴테의 집을 조성한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72)다. "소화하기 어려운 괴테 작품을 만나게 해주는 입구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를 매일경제가 인터뷰했다.

전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독문학자다. 2011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받은 괴테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까지 쓰거나 번역한 책만 70여 권이다. 괴테 작품 외에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를 비롯해 파울 첼란, 라이너 쿤체, 크리스타 볼프의 작품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누군가는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나이, 노교수는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 등장하는 문장 하나에 이끌려 덜컥 일을 벌였다.

젊은 괴테의 집은 전 교수가 꿈꾸는 '괴테 마을'의 첫 번째 공간이다. 이곳엔 그가 쓰거나 번역한 책을 비롯해 희귀 독일 서적 등 200여 권이 보관돼 있다. 그는 "괴테가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둔 '바이마르 괴테하우스'도 조만간 조성할 계획"이라며 "천문대와 미술관, 공연장도 만들어 젊은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두 가지 주제를 젊은 괴테의 집과 괴테 마을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괴테는 문인이기도 했지만 독일 바이마르 공국 재상이자 식물학·광학 등을 깊이 연구한 과학자로 다재다능한 인물"이라며 "젊은이들이 이런 괴테를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가교 같은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은 오히려 당시보다 현재 세대에 더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서 쓴 파우스트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본 작품"이라며 "모든 인간은 욕망으로 인해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오히려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단에서 물러난 후 삶이 더 바빠졌다고 말하는 전 교수는 앞으로 10년간 괴테 전집 24권을 모두 번역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중국에서는 국책 사업으로 학자 120명이 나눠서 하는 작업이다. 그는 "낮에는 괴테 마을 조성과 관리를, 밤에는 번역 작업으로 몸이 다섯이라도 부족한 생활이 계속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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