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가까워진 정부…북 ‘정찰위성 발사’ 계기삼나
“영토 침범 도발”에서 점점 완화되는 중
‘북·러 협력’ 위성 발사 ‘중대 도발’ 간주
‘강경론’ 국방부, ‘신중론’ 통일부 입장차
효력 정지시 ‘우발적 충돌’ 위기 극대화
정부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같은 ‘중대한 도발’이 발생하면 지상·해상·공중에서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금지한 남북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사실상 가닥을 잡았다. 관련 부처 간 ‘강경론’과 ‘신중론’ 입장 차는 존재하는 상황이다. 효력 정지 시 남북 군사적 충돌을 막을 최후의 안전판이 무력화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일부는 14일 밝힌 9·19 군사합의 관련 입장에서 “9·19 군사합의는 우리 군의 대북 정찰 능력과 군사훈련 등 방어태세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돼왔다”며 “정부는 북한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가 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기존 입장과 비교하면 9·19 군사합의 문제점을 명시해 효력 정지 쪽으로 다소 무게를 실으려는 뉘앙스가 읽힌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결정하는 문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도발 직후인 지난 1월 효력 정지 검토 조건으로 “북한의 영토 침범 도발”을 제시했지만 이후 정부는 “국가 안보상 필요” “북한의 행동”을 내걸고 있다. 올해 북한이 핵 능력을 급속도로 고도화한 상황에 맞춰 효력 정지 조건을 ‘중대한 도발’ 수준으로 조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지난달로 예고했지만 지연되고 있는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효력 정지 관련 질문에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통해 한반도 감시·정찰 능력을 확대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군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그런 조치가 있을 때 국방부 입장에선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기자와 통화에서 “북한의 어떤 계기가 있을 때 (효력 정지하는) 그런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공개된 AP통신 인터뷰에서 “만약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한다면 이는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의 한 단계 상승을 의미하므로 이에 대한 강화된 대비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는 실패한 1·2차 때와 달리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뒷받침될 가능성이 큰 만큼 북·러 밀착을 경계하는 한·미 입장에서 더욱 문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문제를 놓고 정부 내 입장 차가 감지된다. 국방부는 지난달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대북 감시·정찰 중요성을 강조하며 효력 정지 쪽으로 급발진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 공중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과 동·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설정된 포 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금지구역 조항을 먼저 효력 정지하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론된다.
극도로 악화한 남북관계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통일부는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효력 정지 여부가) 결론났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국방부가 군사적 사안을 판단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남북관계 상황과 종합적인 판단은 통일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가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를 효력 정지 조건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효력 정지 문제는 “대단히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문재인 정부 뒤집기’ 차원의 구호를 넘어 현실화할 경우 접경지대의 군사적 위기가 극대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이 지난 4월 남북 통신연락선을 모두 차단해 최소한의 소통마저 끊긴 터라 9·19 군사합의까지 무력화되면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북한이 각종 도발적 군사행동으로 9·19 군사합의를 지속적으로 위반했지만 남한이 선제적으로 합의를 깨면 북한 도발을 규탄하는 정당성이 약해진다는 평가도 있다. 남한이 역대 체결된 남북 합의를 먼저 파기 선언한 경우는 없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지킨다는 점에서 북한보다 우월하다”며 “9·19 군사합의를 먼저 효력 정지하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똑같이 취급되고 국격이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적으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https://www.khan.co.kr/politics/defense-diplomacy/article/202310121659001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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