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직원들 “참을 수 없는 모멸감”···전문가 “선거 보도 위축 우려”
박민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취임 첫날 주요 뉴스 앵커들이 예고 없이 교체됐다. 주요 시사프로그램은 방송 당일에 편성이 취소됐다. 취임 다음 날은 사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절차를 무시한 ‘점령군’식 개편에 KBS 직원들은 ‘모멸감을 느낀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 사장의 사과가 선거 검증 보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3일 늦은 밤 KBS 내부 게시판에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글을 쓴다’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시사교양 PD A씨는 “시청취자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회사의 메인 뉴스 앵커가 하루아침에 잘려 나가고, 정규 프로그램이 결방돼 예정에 없던 재방송이 나가는 작금의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느끼냐”라며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방송을 제작하는 구성원의 존재 자체를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용히 프로그램 만들어 온 내가 게시판에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면서 내가 무슨 피디인가 싶어서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글을 쓴다”고 밝혔다.
이른바 ‘탈진영’을 추구하는 KBS ‘같이노조’도 비슷한 시간에 성명을 냈다. 같이노조는 앵커 교체, 프로그램 편성 취소 사태에 대해 “인사권을 부정하지 않지만 합당한 절차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일을 무언가에 쫓기듯 서두를 필요는 없다”라며 “KBS를 개혁하겠다는 일성이 초라할 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 기자협회, PD협회도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KBS 직원들은 13일 통보된 ‘갑작스러운 진행자 교체’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10년 이상 제작 현장에서 일한 PD B씨는 14일 기자와 통화하며 “사내 심의, 방심위 등 일상적으로 심의를 겪으며 상식 수준의 공정성은 지켜오고 있었다고 평가받아왔는데, (박 사장이) 못할 방송을 한 것처럼 사과한 게 황당하다”라며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앵커, 진행자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10년 이상 경력의 작가 C씨는 “첫 번째로 바꿀 것이라 예상했던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명분과 절차는 챙겼으면 좋겠다”라며 “진영이 다르다고 판단되는 인물, 특히 출연자에 대해 굉장히 강경하다고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KBS 보도, 제작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10년 이상 경력의 시사교양 PD D씨는 “보도, 시사, 라디오 현장에서는 개별 직원의 책임을 묻겠다고 한 만큼 자기 검열이 심해질 것 같다”라며 “사장이 든 예시가 주로 한 쪽에만 불리한 보도라 마치 ‘가이드’처럼 보이는 듯 해 두렵다”라고 말했다. 10년 이상 일한 기자 E씨는 “앞으로 모든 의사 결정이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는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라며 “편성 규약, 단체협약 등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만든 장치들이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KBS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14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불공정 논란이 있을 경우 문책하겠다”라며 서울시장 선거 과정의 의혹보도 등을 언급했다. “확인된 내용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라고도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의혹을 제기하는 게 언론의 기본 역할”이라며 “사후에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혀질 가능성을 이유로 보도를 하지 않겠다면 선거에서 언론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 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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