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토켈라우의 비극
서울시 중구보다 작은 태평양의 섬나라, 토켈라우(Tokelau)에 대해 들었다. 생소한 이름이라 검색해보니 '전 세계 도메인 4위'라는 10년 전 뉴스가 보인다.
인구 1400명에 불과한 이 나라 인터넷 주소 도메인 사용자는 한때 2500만명으로 세계 1위였다. 짐작하다시피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최신 호에 재난영화 같은 토켈라우 이야기를 자세히 실었다.
작디작은 섬나라는 자기도 모르는 새 '글로벌 사이버범죄의 메카'가 됐다. 전 세계 스팸 업자, 보이스피싱 사기단, 음란물 제작자, 도박 사이트 운영자, 테러리스트들까지 앞다퉈 둥지를 틀었다(고 신고했다). 사기꾼들은 지난 20년간 토켈라우 도메인으로 수백~수천 개씩 웹사이트를 만들어 범죄에 사용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토켈라우의 도메인 '.tk'는 그렇게 스팸 진원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토켈라우의 비극은 20여 년 전 어느 사업가에게 '국가 도메인 관리(ccTLD)'를 맡기면서 시작됐다. 때는 2001년 인터넷 초창기, 암스테르담 출신의 요스트 쥐르비르는 토켈라우를 찾아가 '달콤한 제안'을 한다. 국가 인터넷 주소 전권을 주면 도메인을 무료 배포하는 대신 광고를 걸게 하고 수입 일부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웹사이트가 뭔지도 모르던 토켈라우 대표들은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했다. 쥐르비르는 토켈라우에 인터넷을 깔아주고, 본인 링크트인에 '국가 GDP 10%를 책임진다'고 홍보했다. 몇 년간은 잘 돼가는 듯 보였지만, 곧 대금이 밀리고 범죄집단 연루설이 외딴섬까지 전해지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모든 것이 망가진 뒤였다.
.tk 도메인은 올해부터 등록이 금지됐다. 토켈라우 모든 이메일과 웹사이트는 뉴질랜드의 '.nz' 도메인에 호스팅돼 있다. 20년 전 잘못된 결정으로 '디지털 주권'까지 잃고 만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렇게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다. 정치 지도자와 여론 주도층이 매일 '열공'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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