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공급자 공매도 금지하면 ETF시장 붕괴"
금융당국, 개인투자자·정치권 압박에
시장조성자 등 공매도 현황 점검 나서
증권·운용사 "이익 아닌 헤지 목적
제한땐 환금성 악화돼 펀드런 우려"
일각 "'불가' 명분 쌓는 과정" 평가
공매도 금지 대상에 시장조성자(MM)·유동성공급자(LP)까지 포함하라는 일부 투자자들의 아우성에 금융 당국이 그 가능성을 검토하자 금융투자 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은 유동성공급자까지 공매도를 막을 경우 100조 원을 넘어선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증시 역사상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를 막은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감독원에 시장 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가 시장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계는 이를 시장 교란과 시세조종 행위 등을 살피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금감원이 2021년 시장 조성자 9곳에 대해 주가 조작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던 사건을 상기한 것이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9일 국회에서 “시장조성자의 공매도를 막으면 투자자 보호나 시장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을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금감원뿐 아니라 한국거래소도 당국의 요청을 받고 미래에셋·NH투자증권(005940) 등 유동성공급자 역할을 하는 대형 증권사를 상대로 의견을 수렴한 뒤 그 결과를 금융위에 전달했다. 금융투자협회도 13일까지 당국과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주요 증권사와 운용사들의 입장을 별도로 취합했다.
당국이 시장조성자·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까지 점검하고 나선 것은 6일부터 실시한 공매도 금지 효과가 벌써 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부진한 주가 흐름을 공매도 금지에서 예외가 된 대상 탓으로 돌리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거래소와 금투협에 의견을 낸 증권사와 운용사는 예외 없이 공매도 금지 대상 확대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유동성공급자의 경우 이익 취득이 아닌 헤지(위험 분산) 목적으로 공매도를 하고 있어 외국인과는 그 취지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실시간 헤지가 필요한 ETF 시장에서 유동성공급자들의 공매도를 막으면 투자자들의 환금성이 급격히 떨어져 최악의 경우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 요구)’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조성자의 경우 애초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미미해 이를 문제 삼기 힘들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금투협 관계자는 “테마형 ETF를 많이 보유한 중소형 운용사들의 반발이 가장 컸다”고 전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주식형 ETF는 공매도 외에는 헤지 수단이 없다” 면서 “유동성공급자가 없으면 투자자들이 비싼 가격에 ETF를 사고 매도할 때는 싸게 파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공매도 제도를 전면 개편하면서 사상 초유의 금지 대상 확대 방안을 실제로 추가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ETF 유동성공급자보다는 시장조성자를 제한할 여지는 있지만 이 경우도 주가 부양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거래소도 9일 “미국, 유럽연합(EU) 등 해외에서도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할 때 시장조성자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며 “공매도 금지 이후 3일 간 파생 시장조성자, ETF 유동성공급자의 헤지 목적 공매도 물량은 코스피·코스닥 거래대금의 1% 미만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국의 최근 움직임이 정치권 압박에 대한 시간 벌기용이나 명분 축적용이지 공매도 금지 대상을 실제 확대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위는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공매도 담보 비율 차이와 대주 상환 기간을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르면 이달 내 공매도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시장조성자·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를 제한하면 ETF, 선물·옵션,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구조화 상품 시장의 호가 제시에 차질이 빚어져 또 다른 투자자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양지혜 기자 hoj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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